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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Jan 31. 2021

하수구 내시경을 받아봤습니다만...

주택 탐구생활 4_주택살이의 고단함 

단독주택 입주 9개월 차, 최근 두 차례 전문가를 불러 집을 손봐야 했다. 어느 날 아침 냉장고 불이 나가 있어 확인해 봤더니 누전차단기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부엌 쪽 전기 절반 부분에 전기를 공급하는 어딘가에서 누전이 발생한 거였다. 하필 체감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날이었다. 우리 집이야 냉장고지만, 어느 집에서는 난방기가 멈추고 또 어느 집에서는 수도와 전기가 동시에 말썽인 그런 날이었다. 부동산 사장님 인맥을 통해 그래도 몇 시간 안에 전기를 보는 분이 와주셨다. 벽 안에 있을 전선을 따라 냉장고를 들어내고, 주방 살림살이 이것저것을 꺼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속살이 드러날 때마다 하나씩 문제가 늘어났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긴 전기선이 누전으로 끊어진 채 벽 안에 들어있었다. 우리가 이사 오면서 1층에 세탁실을 하나 새로 만들었는데 전기 연결이 제대로 안 돼 있어 콘센트 안쪽이 눌어붙어 있었다. 


누전을 잡고 전기를 다시 연결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스스로를 '업계 셀럽'이라고 소개한 전기 사장님은 전화기가 5분에 한 번 꼴로 울려댔다. 서울-수도권에서 전기와 관련된 슬픈 사연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장님을 찾는듯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전기 사장님은 부동산 사장님을 (굳이) 우리 집에 오도록 했다. 처음부터 부동산에서 수리 비용을 집주인이 낼 거라고 말했던 터였다. 작업이 늘어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며 단가에 맞춰 일을 하거나 일에 맞춰 단가를 올리겠다는 노련함이...  업계 셀럽이긴 셀럽인가 보다 싶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오자, 전기 사장님은 '집이 오래돼 손 닿는 곳마다 부서진다'고 말씀하셨다. 전기 사장님을 얼레가며 일을 시키던 부동산 사장님은 나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단독주택 사는 게 이럴 땐 참 힘들죠"라고 하셨다.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는 전기 사장님 성화에 어쩔 줄 모르겠는 사이, 냉장고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어찌 됐건(!) 전기는 다시 돌아왔다. 


부엌 싱크대는 원래도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설거지 한 차례에 물이 반쯤 고일 정도로 막히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며 약도 뿌리고 뜨거운 물도 여러 차례 부어봤지만 소용없었다. 최근 전기를 고치며 정신이 혼미해진 터라, 사람을 불러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있었다. 이미 두어 달 전, 싱크대 하부장에서 물이 철철 새 나와 사람을 한 번 불렀던 적이 있었다. 출장비 15만 원에 분명 이것저것 손봤다고 했는데 다시 이렇게 되니 마음이 안 좋기도 했다. 이번에는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유튜브 영상을 올렸던 하수구 전문 업체에 연락해 출장을 요청했다. 석션 기계라고 부르는 커다란 장비로 이물질을 뽑아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내시경까지 동원해 하수구 상태를 살폈다. 하수구 구조처럼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꼬여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끊어진 관이 중간에 턱 막혀 있었지만 구조가 복잡해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출장 나온 사장님은 '이건 배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이 만들었다'며 혀를 찼다. 배수는 관을 두껍게 하고 최대한 직선으로 하는 게 기본인데, 직경이 너무 좁은 관을 쓴 데다 복잡하게 꼬여 있단 설명이었다. 사장님은 근본적인 해결을 해줄 수 없게 됐다며 출장비에 내시경 비용을 더해 받으셨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게 됐으니 속은 시원했다. 부엌 싱크대 물은 여전히 답답하게 빠지지만.


내시경까지 동원... 대체 저 이물질은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이냐...!


사장님은 주택이 제일 손보기 어렵다고 했다. 아파트는 출장을 나가기 전부터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훤하기 때문에 크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다. 게다가 건축기술이 좋아지니 갈수록 하수 처리 기능도 좋아져 불편할 일도 별로 없다고. 우리 집 하수도를 근본적으로 고치고 싶으면 바닥을 다 뜯어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 선에서 선택할 수 있는 공사 수준이 아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오래) 사는 게 우리 목표인데. 부동산에 '이런 상황이다' 전달만 해두었다.


주택에 살면 '손이 많이 간다'해서 걱정했는데.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주택살이의 걸림돌이기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일 때가 많았다. 문제는 '내 손'을 벗어난 일들이다. 


살면 살수록 정말 좋은 집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 등기상 지은 지 21년째인 집인데, 집주인이 바뀐 뒤 한 번 리모델링을 했다. 원래 집 구조를 모르긴 하지만, 넓게 트인 구조나 우아한 주방 디자인, 성능 좋은 이중창은 그때 다시 손보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전기 구조나 하수구는 21년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쌓여온 문제일 터였다. 집에 애정이 강하고 건축 경험도 많은 우리 집주인이었다면, 돈을 아끼자고 하수구 직경을 좁게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다. '집주인도 모르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가 잘못 써서 망가졌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생각이 많아졌다. 남편과 함께 쪼록쪼록 내려가는 하수구 물을 바라보며 만약 우리가 집을 새로 짓게 된다면 하수구 설치 비용을 아끼지 말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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