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층 아파트 한가운데인 7층 신혼집. 눈을 떴을 때 내 머리 위로 윗집의 침대가, 그 윗집의 침대가, 그 윗집의 침대가 있고. 내 아래로 아랫집 침대가, 그 아랫집 침대가, 그 아랫집 침대가 있다고 생각하니 속이 답답해져 왔다. 물론 예외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아파트는 '안방'이란 구조가 있고, 침대가 들어갈만한 '자리'가 마련돼 있다. 더 이쁘게 꾸민 사람도 있고 아예 새롭게 리모델링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집을 세련되게 꾸밀 여유도, 그만한 감각도 없는 나는 그냥 그렇게 짜인 구조대로 가구를 놓고 식탁을 놓고 살았다. 아파트 베란다에 이마트에서 산 작은 텃밭도 둬보고 집 안에 화분도 많이 들여봤지만 진짜 땅을 밟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넓을 필요도 없는 그냥 한 뙈기, 다만 진짜 땅. 빌라에만 살아본 나에게 아파트는 과분할 만큼 좋고 편리하고 안정적이었지만, 자꾸만 내 삶이 아파트 규격을 못 벗어나는 것만 같아 늘 목말랐다.
친정집 사진첩에는 회색 시멘트 마당에서 갈색 '다라이'에 물을 받아놓고 언니와 놀고 있는 사진이 있다. 80년대에는 아파트보다 일반 주택이 더 흔했다. 물 한 바가지만 받아줘도 애들은 참 잘 노는데. 아파트는 쉼의 공간으로는 훌륭하지만 안과 밖의 구분이 뚜렷해 신나게 뛰어놀 '놀이' 공간까지 돼 주지는 않는다. 주말이 되면 뀨랑 어딘가 특별한 곳에 '나가'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멋지게 꾸며진 대형 수영장 시설에서 뀨가 알록달록한 기구들을 타는 사진, 그 사진을 찍는 그런 순간도 좋지만 내 집 갈색 대야에서 추억을 쌓는 것도 참 좋을 텐데 싶었다. 아파트는 어떤 면에서 아이들 친화적이지만 (여러 아이들이 모이는 대단지라든가, 차가 다니지 않는 조경 시설이라든가), 어떤 면에서 아이들에게 참 맞지 않는 구조다(뛰지 마, 뛰지 마, 뛰지 마).
코로나19로 주말마다 외출도 불가능한 극단적인 상황이 되자 나와 남편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나와 남편에게는 멀어진 출퇴근 거리부터 쓰레기 관리까지 크고 작은 불편함도 함께 생겼지만, 아이한테만큼은 주택이 더 좋다는 확신이 든다. 더 이상 '뛰지 말라'라고, '아래층 아저씨가 이놈 하러 올 거라'고 협박하지 않아도 된다. 4살, 5살 아이에게 뛰지 말라니... 그냥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게 최선일뿐이다. 아이에게 맘껏 뛰라고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택에 온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장점은 더 많다. 나는 뀨가 다양한 천장을 보고 크는 게 참 좋다. 회색 벽지가 둘러진 인규 방은 천장이 삼각형 모양이다. 복층 구조인 거실도, 안방도 천장 모양이 제각각이다. 집이란 게 꼭 네모는 아니란 걸, 공간이란 게 꼭 반듯한 것만은 아니란 걸 뀨가 자연스럽게 알았으면 싶었다. 왜. 뀨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화려한 전등은 비록 내 취향이 아니지만) 복층 구조 우리 집에는 다양한 천장이 나온다. 뀨한테 '집은 다 같은 모양이 아니'란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건축가 유현준, 2018년 12월, 세바시 강연 중>
"학교는 우리 아버지가 다니는 학교나 제가 다니는 학교나 우리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똑같아요, 건물이. 70~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큰 문제가 안 됩니다. 왜냐면 방과 후가 되면 마당에서 놀던지 골목에서 뛰어놀았어요. 요즘 아이들이 좀 문제죠. 요즘 신혼부부들은 첫 번째 집을 다 아파트를 살기 때문에 아이들은 다 아파트에서 태어납니다. 마당 대신 거실에서 놀고 골목길 대신 복도에서 놀고. 학교 가면 교실에서만 지내고 방과 후에 상가에 있는 학원에 가고 왔다 갔다 이동할 때 봉고차에 실려서 이동해요. 24시간 거의 대부분의 시간들을 실내 공간에서만 지내는 거죠. (중략) 거의 변화가 없는 이런 실내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에 변화를 볼 수 있는 건 스마트폰과 게임밖에 없어요."
아이들이 지내는 학교 건물이 교도소 건물과 똑같이 생겼다는 건축가의 설명에 웃음이 나왔지만 곧 씁쓸해졌다. 아이가 지내는 공간에 조금이라도 상상력을 더해주고 싶었다.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단독주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벚꽃이 만개할 때 집 구경을 왔다 꽃잎이 떨어질 때쯤 이사를 들어왔다. 화려한 봄 풍경에 홀딱 반했지만 자동차를 노랗게 덮는 송화가루에 기겁했다. 마당에 노란 연기가 피어올라 남편이랑 '어디서 훈련 같은 걸 하나?' 했는데 송화가루가 날리는 거였다. 여름에는 마당에 작은 튜브 수영장을 설치해서 뀨가 실컷 놀 수 있게 해 줬지만 모기 습격을 피할 수 없어 아이 다리가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었다. 유난했던 올여름 긴 장마철 눅눅함도 고스란히 겪었다. 마을 입구 작은 감나무에 달린 감이 볕을 실컷 쫴 주홍빛으로 물들어가자 가을이 시작됐다. 안방 창에서 가을 풍경을 만끽하며 내가 가을을 좋아한다는 걸 올해 처음 알게 됐다. 동시에 추위도 시작됐다. 북향인 뀨 방 온도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며 각종 온풍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1년의 반 바퀴를 돌고 이제 남은 절반, 겨울이 오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11월, 둘째가 태어난다. 5년 전 뀨를 맞이했던 딱 그 계절이다. 뀨와 뀨 동생과 단독주택에서 맞게 될 겨울은 또 어떨까. 이 아이들한테 또 우리 부부에게 집은 어떤 공간이 돼 줄까. 눈 쌓이면 또 어째야 하나 싶지만 재밌는 일도 생길 것 같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거, 그 자체가 이 공간에 사는 이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