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Oct 29. 2020

집값이 제자리여도 초연할 수 있을까.

단독주택에 살지만 '살' 용기까지는 없는 나.

단독주택 단지에 살다 보니 이웃과 인연 맺기가 쉽지 않다. 아파트에서는 그래도 같이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오고 가면서 인사하고, 그래도 같은 층 사는 가족들과는 가끔 음식도 나눠먹고 안부도 전하면서 지냈는데. 단독주택은 '이벤트'가 없으면 얼굴을 트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몇 번의 이벤트가 있었는데 한 번은 옆 옆 집에서 우리가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후진하다 뽀개셔서(!) 인사를 하게 됐고. 최근 한 번은 우리 집에 택배가 잘못 배달돼 택배 주인을 찾다 보니 건너편 이웃집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게 됐다. 동네에서 주차에 엄격하고 무섭기로(!) 소문난 바로 옆 집 '링컨 할아버지' 댁에는 망설이던 끝에 언니가 농사지은 감자를 나눠드리며 먼저 인사를 드렸다. 노부부 두 분이서 사시는데 할머니께서 뀨를 엄청 귀여워해 주셨다. 링컨 할아버지는 여전히 무섭지만 어느 날 차를 타고 나가며 할머니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모습을 봐버렸기 때문에 (나 혼자) 조금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

 

'택배 오배송 사건'으로 인사를 나누게 된 건너편 '뾰족 주택 집' 어르신이나 링컨 할아버지 댁이 이 동네 대표 원주민이다. 20여 년 전 단독주택 택지를 사서 원하는 대로 집을 지어 지금까지 계속 사신 분들. 수시로 정원 손질을 하고 부지런히 잔디를 깎고. 볕이 좋으면 마당에서 트로트를 들으며 차를 마시거나 하얀 이불 빨래를 내놓으시는 분들. 커다란 개를 키우기도 하고. 주말이면 자녀들이 올망졸망한 손주들과 방문해 실컷 놀다가는 그런 삶을 사는 분들.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뾰족 주택 집 어르신은 나를 만났을 때 한숨을 쉬셨다.


"어때요, 살기 좋아요? 살기 너무 좋죠? 나는 여기 20년 넘어 살아서. (여기서 한숨) 이제 어디 가고 싶어도 못 가."


여러 뜻이 담긴 말일 수 있지만 순도 100% '팩트'기도 하다. 서울 중소형 아파트 시세는 최근 3년 동안 66%, 중형 아파트는 62%, 중대형 아파트는 57% 상승했다(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김상훈 의원실, 한국감정원 자료). 같은 기간 이 동네 주택이 얼마나 올랐는지는 명확히 따지기 힘들다. 규격화되지 않은 단독주택은 시세 형성 자체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다만, 우리 집 건너편 주택 한 곳이 최근 집을 내놨는데 팔리지 않아 결국 집주인 자녀분이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 내가 대충 아는 최근 2~3년 사이 이 동네 주택 시세보다, 약 20% 정도 가격을 올려 내놨다고 전해 들었다. 결국 팔리지도 않았지만 팔다 한들. 지금 집 크기의 절반 정도 되는 '좋다는 지역' 아파트에도 입주가 불가능한 금액이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지금 서울 아파트 시세라는 게 그렇다. 마치 누가 장난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더 바깥으로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문자 그대로 '이제 어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게 현실이다.


길 건너 산책을 나갔다 본 '매매 문의' 집. 가뜩이나 시세 잡기도 어려운 주택은 급하게 팔려면 제 값을 받기 더 힘들 텐데. 집주인은 어떤 사연일까- 한숨부터 나왔다.


남편이랑 마당에 누워 가을볕을 쬘 때면. 안방 창을 통해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벚꽃 나무를 볼 때면. '우리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묻곤 한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아직 우리에게는 더 고민할 시간이 남아 있고 운이 좋다면 그 기간을 더 늘릴 수도 있겠지만(주여...) 언젠가는 답을 내려야 할 날이 올 터다. 뾰족 주택 집 어르신처럼, 링컨 할아버지 댁처럼 계속 이렇게 그림같이 살고 싶지만 동시에 아찔하게 오르는 아파트 값을 보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싶다. 집은 자산가치 이상의 '삶'을 담는 그릇임을 잘 알고 있는데. 자산가치가 담보되지 않는 이 그릇에 불만도 불안함도 없이 계속 잘 살 수 있을까. 지난 수십 년 동안 몇 차례 지나간 부동산 격변기, 미처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했고 재건축도 재개발도 요리조리 피해 간 우리 친정집을 보면. 머리 써 남들보다 좋은 기회를 잡진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 사는 것만큼은 따라가 줘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 잎이 제법 떨어졌다. 이런 풍경을 두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디에 살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연결돼 있고 그래서 답을 찾아 여기까지 와 봤는데. 코로나 이후 시대에는 주거 환경이 더 중요해지고 여러 가치의 기준점이 달라질 거라는데. 실제, 내가 직접 겪고 느끼고 있는데. 그런데 점점 내 손에서 멀어져 가는 저 서울 아파트 값에 '나는 초연할 수 있을까'.


"올 겨울을 보내고. 단독주택에 치를 떨 수도 있어. 근데... 우리 집 너무 좋지 않아?"


우리 대화는 오늘도 이렇게 끝난다.  


이전 17화 주택살이 2년 차, 버찌를 발견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