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를 수 없는 돌로 쌓은 탑
첫 기억에 대한 편지, 이경
‘첫’하고 입을 뗄 때면 종종 망설여져요. 제가 말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처음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들러붙은 것들이 많아 헤집어 꺼내 든 것이 과연 처음이 맞는지 의심할 법도 하지요. 하지만 유희씨에게 쓰는 지금 이 편지는 여지없이 분명한 ‘첫’입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캄캄한 밤은 창문 너머에 있고, 흰 불빛은 나무 책상 위에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첫’은 시간의 규칙을 따라 생깁니다. 사람들이 돌을 하나둘 모아 시간이 지날수록 높이 쌓아 올리는 돌탑과도 같습니다. 산을 오르는 갈래 길 혹은 그런 길옆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오가며 투박하게 쌓은 돌탑 말입니다. 모양도 질감도 색도 다른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려면 어떤 돌은 어두운데 숨어 탑을 받쳐야 합니다. 또 어떤 돌은 바깥에 고스란히 나와 다른 돌 위에 올라 앉아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숨은 돌과 바깥 돌이 겹치는 면은 순서를 따지기 어렵습니다. 숨은 돌이 까무룩 잊히는 동안, 바깥 돌은 햇빛과 비바람과 눈발을 맞으며 그 자리에 있습니다. 제가 삼십 년 넘게 쌓아 올린 기억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은 속에 숨고 어떤 것은 명징하게 새겨집니다. 허술한 명과 암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탑은 끊임없이 높아지기에, 하릴없이 바깥 돌이 선명해집니다.
거기서 가장 아래에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아빠의 오른손을 잡고 병원 복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겨우 여섯 살 난 해였으므로 짧은 팔을 위로 쭉 뻗어 잡고 있었고요. 아빠의 왼손을 잡고 있는 한 살 어린 여동생도 저와 비슷한 모양새로 걷고 있었습니다. 손바닥은 약간 축축했는데 그것이 어느 손에서 난 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엄마랑 동생 보러 갈 거야’라고 했던 아빠의 말이 꽉 차 있었지요. 옅은 회색과 창백한 베이지색의 바닥, 천정, 벽 사이사이 이어진 은빛 손잡이들을 스쳐 갈 때마다 알코올 냄새를 맡았습니다. 종종걸음으로 열 발자국이나 걸었을까요.
코너를 한번 돌고 나니 끄트머리에 병실이 보였습니다. 반쯤 열린 문 너머 누군가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차츰 가까워졌어요. 우리가 걷는 소리가 들렸던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밖을 보는데, 엄마였습니다. 왔어? 그렇게 말했어요. 빼죽한 턱을 조금 쳐들고 피곤한 눈으로 우리를 또렷이 보았지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약간의 쇳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얄궂게도 기억은 거기까지입니다. 병실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도 했을 텐데, 그러고 신생아실로 동생도 보러 갔을 텐데. 이상하게도 남은 것이 없는 겁니다. 어느 구석의 숨은 돌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그때 태어난 남동생과 엄마는 며칠 뒤에 함께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남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흰 피부와 빽빽한 검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붓기가 빠지지 않은 젊은 엄마와 묘하게 닮은 모습이기도 한데, 아빠와 친할머니를 닮아 약간 까무잡잡하고 눈이 길쭉한 저와는 다른 생김새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남동생을 꽤나 귀여워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남동생을 품에 안고 있거나 옆에 착 달라붙어 있곤 합니다. 아빠도 엄마도 제게 동생을 잘 보고 있으라고 하면 정말 그랬다고 하고요. 조그만 손을 쥐고 놀아주기도 하고, 울면 달래보려 하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정작 저의 기억 속에 남동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 애가 태어난 지 다섯 해나 지난 때입니다.
기억을 쌓는 것과 돌탑을 쌓는 것이 같다고 했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재료를 고를 수 있느냐 없느냐일 겁니다. 기억은 그저 생겨나는 것이라 어떤 것은 버리고 또 어떤 것은 취하여 마음에 드는 것들로만 쌓을 수가 없습니다. 문득 뒤돌아 불규칙하게 조각난 돌로 쌓인 탑을 보며 숨은 것을 궁금해하고 바깥의 것을 어루만질 뿐입니다. 그러다 어떤 부분은 특별히 오래 보기도 하고, 예쁘게 표시도 합니다. 유희씨와 함께 편지를 쓰는 것도 그런 일이 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적고 나니 어쩐지 다녀간 이 없는 눈밭을 발견한 기분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햇빛에 반짝이는 표면을 구경하고 손으로 슬슬 쓸어도 보고 발목 깊이 빠져서 발자국도 남기고 싶어집니다. 맑고 찬 공기에 입김도 하얘지도록 눈밭에서 놀고 싶습니다.
바야흐로 명백한 처음의 순간입니다. 다음 편지를 쓸 때까지 이 기분이 계속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