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Oct 18. 2023

'닭'으로 시작하는 기억

첫 기억에 대한 편지, 유희

   어린 시절, 부모님은 집에서 기른 닭을 직접 잡아 닭이 들어간 여러 요리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손질한 닭을 어머니에게 드리면 어머니는 닭개장이나 삼계탕 같은 음식을 해주셨지요. 집에서 기른 닭의 맛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따듯했지만, 닭고기를 씹을 때마다 닭의 눈이 어른거리고 닭이 꼬오꼭 거리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분에 대해 밥상 앞에서 떠드는 일은 당연히 어린아이가 하면 안 되는 것이었지요.      


   저의 생애 첫 기억은 집에서 기르던 닭에게 모이를 주려고 했던 순간에 있습니다. 커다란 햇빛이 마당을 덮고 있던 오후, 어린 저는 발에 맞지 않는 어른 슬리퍼를 끌고 마당 왼편에 있던 닭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적당히 따듯한 햇빛과 살랑살랑 부는 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내 좁은 닭장 안에서 닭들이 요란하게 울어대고, 저는 모이를 제대로 주지도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닭들이 저의 손을 마구 쪼아댔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집 안에 있던 엄마가 나와 저를 살펴 주었는지 그대로 울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닭들은 정확하게 모두 죽었을 겁니다. 병들어 죽었거나 우리 가족에게 잡아 먹혔을 거예요.

   “아빠, 오늘은 이 닭을 먹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며 저는 아버지가 닭을 잡는 모습을 자주 들여다보았습니다. 마당에 쪼그려 앉은 아버지가 닭의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목을 치고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닭털을 뽑던 모습. 닭의 내장을 파내고 그것들을 개에게 던져주면 개가 핥아먹던 모습.      


   사실 이런 기억들은 조금 왜곡되었을지 모릅니다. 확실한 게 잘 없습니다. 확실한 건 냄새뿐입니다. 비릿한 닭의 냄새. 날것의 냄새. 마당의 흙을 적시던 피의 냄새.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냄새입니다. 정확한 냄새입니다.     


   이경 씨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편지로 나누기로 했지요. 저는 어린 시절 기억을 많이 왜곡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냄새와 소리는 몸으로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떠올리는 이미지는 제 것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 시절 많은 글을 읽었지요. 책으로 프린트로 기성작가와 습작생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이후, 기억을 혼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우글우글거립니다. 비좁은 닭장 안에서 서로를 밟고 쪼아대며 쪼고 있는 것이 모이인지 어미 닭의 발인지, 형제의 머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닭처럼 헷갈립니다. 닭에 대한 기억도 조금은 과장되어 있고 어쩌면 닭에게 손을 쪼이던 순간은 제 기억 속 처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태에서 앞으로 어떻게 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고민이 되어 편지의 마무리를 계속 썼다 지웠다 해봅니다. 아무래도 앞으로의 편지는 이 헷갈리는 이미지를 추려내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파편처럼 쪼개져 있는 기억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면 그 기억은 온전히 제 것이 되겠지요. 다음 편지는 더 나아지길 기대합니다. 

이전 01화 고를 수 없는 돌로 쌓은 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