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Jul 02. 2023

창문을 건너보는 날     

집에 대한 편지, 이경

    유희 씨는 길을 걸을 때 시선을 어디에 두시나요? 정면을 똑바로, 혹은 더 먼 곳에, 그도 아니면 발을 딛는 자리 중에 말이에요. 저는 되도록이면 먼 곳에 시선을 두고 걷는 편입니다. 사람이 많은 길에서는 사람들 머리 위로 눈길을 두려 하고 건물이나 자연 풍경이 도드라지는 곳에서는 그곳에 시선을 두지요.


    자주 산책을 나가는 천변에서도 그렇습니다. 그곳은 시의 경계 지역에 있고 도로 아래에 자리 잡은 탓에 길 옆에 밭과 작은 농원들, 그 너머로 몇 군데의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곳입니다. 밤에 걷다 보면 불이 켜진 네모난 집들이 제 시선에도 들어오지요. 어두운 곳에서 보는 밝은 집의 풍경은 꽤나 선명합니다. 대개 주홍빛, 새하얀 빛, 조금은 푸른빛이 들어찬 거실입니다. 소파와 TV가 놓여 있고, 사람은 거실에서 다른 방 혹은 부엌으로 걸어가고 있거나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어쩔 때는 발코니에 철 지난 장식이 붙어있기도 하지요.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한 이 풍경을 보며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저는 태어난 이래로 쭉 같은 집에 살아왔습니다. 원래는 단층집이었던 것을 제가 첫 돌을 막 넘긴 해에 지하와 옥탑이 있는 다가구 주택으로 다시 지어 올렸다고 합니다. 붉은 벽돌과 반투명한 유리 새시, 좁은 계단과 철제 대문으로 이루어진 집이지요. 여동생이 결혼해서 이 집을 나가기 전까지 저는 오롯이 혼자서 방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방은 작고 서로의 취향은 달랐던 탓에 가구를 고르고 배치를 하는 기준은 무조건 '효율'이었습니다. 다른 공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그런 집에 때로는 친할머니의 고향에 사는 친척 삼촌이 와서 묵고, 해마다 세 번은 이 집에 살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작은 아버지 댁 여섯 식구가 몰려들었습니다. 틈틈이 친할머니와 부모님이, 저와 여동생이 울며 불며 싸우기도 했고 상이 꽉 차도록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일도 잦았으니 여러모로 복닥 복닥 한 집이었지요.     


    그래서 집에 혼자 남겨지는 때를 좋아했습니다. 그럴 때는 안방에 있었습니다. 이 집의 안방은 창문이 꽤 큽니다. 벽의 반절을 꽉 채우고 있으니까요. 그 창문에서는 저희 동네와 옆 동네, 그 옆의 동네까지도 너르게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가파른 경사를 타고 높은 지대에 지어진 집이기 때문이죠. 가까이 붙어 시야를 가리는 건물도 없고, 대부분의 건물이 고만고만한 높이로 지어진 덕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날이 맑으면 창문 턱에 바짝 붙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흘러가는 풍경을 보기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딱 창문만큼 자리를 차지한 햇빛에 몸을 구겨 넣기도 하고요. 그러고 있으면 폭신한 이불을 덮고 있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누워서 창문을 보면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디 좋은 곳에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그저 드러눕는 것으로 그랬다가, 빙그르르 돌아 누우면 집안이라는 것도 좋았습니다. 집 밖의 것들을 떠올리며 몽상에 젖어있다가도 다시 익숙한 장소에 발붙이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식이었습니다. 이것은 꽤나 소심하고 나약한 사고방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전한 곳을 함부로 벗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삶의 어떤 위기를 넘긴 적도 더러 있었으니 다행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삼십 년을 넘게 이 집에 살면서 얻은 장점 중 하나이지요.      


    이런 생각을 다 하도록 산만큼, 집은 점점 낡아왔고 이곳에 사는 이들도 조금씩 사위어 왔습니다. 함께 사는 가족 중 하나였던 아버지의 막냇동생은 제가 유치원생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하에 있는 방에는 4, 5년 전부터 사람이 들지 않아 계속 공실로 남아있고 친할머니는 작은 아버지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셨지요.


    저는 그간 회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바빴습니다.  복닥 복닥 했던 집에 정적이 찾아드는 순간은 차츰 늘어났고 안방에서 볕을 쬐는 시간도 점점 없어졌어요. 그래도 여전히 방에 누워 하늘을 보던 때처럼 시선은 멀리 두고 걷습니다.


    그렇게 걷다가 이따금 다른 집의 창문을 건너다봅니다. 똑같이 생긴 창문 너머로 들여다보면 다른 삶도 비슷하게 보이는 걸까요? 천변을 걸어 다니며 그런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토록 다른데 왜 서로 비슷한 부분을 자꾸 발견하게 되는 것인지, 어쩌면 나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라서요.      

   

 유희 씨, 우리가 주고받는 이 편지들도 창문이 될 수 있겠지요? 풍경을 공유하고 때로는 활짝 열어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는 통로 말입니다. 집에는 그런 창문이 필요하잖아요. 우리가 짓는 창문이 서로의 집에 볕을 잘 들여다 줄 수 있기를 바라요. 진심입니다.

이전 04화 불안으로 이루어진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