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편지, 유희
남편과 저는 보증금 700만 원, 월세 40만 원을 내야 살 수 있는 오래된 빌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잠시라도 못 보면 괴로웠기에 매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결혼한 햇수가 더해질수록 그 절절했던 마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오래 함께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가 우리의 집을 완성하게 합니다. 이렇게 남편과 제가 만들어 놓은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양이와 아이까지 함께한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제 부모님도 처음에 사랑했을까요? 연애로 시작한 결혼이었던 것을 보면 제 부모님도 처음 집을 마련하며 사랑으로 완성된 아늑한 집을 꿈꾸었을지 모릅니다.
어릴 때 살았던 기억 속 첫 집은 작은 산을 등지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집을 지은 사람이 설계를 잘못했는지 천장 위로 쥐들이 마구 뛰어다니며 놀던 그런 집이었지요. 집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고 집 옆으로는 재래식 화장실과 닭장이 있었습니다.
산 아래 있던 집은 항상 햇빛이 잘 들지 않았고 눅눅했습니다. 그 집에서 제 가족 모두가 저마다의 그늘을 가지게 된 걸 보면 집터가 그리 좋았던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집에서 좋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고 엄마의 어깨를 주무르고 퇴근하고 온 아빠의 볼에 입을 맞추던 기억. 그 작은 기억들이 지금의 저를 살아있게 하는지 모릅니다. 좋은 기억만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에서 지내는 꿈을 꿉니다. 그 집에서 대학 시절 친구들과 선생님도 만나고, 남편과 맛있는 것도 나눠 먹고, 집을 향해 거대한 강물이 밀려오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저는 어린아이가 되었다가 고등학생도 되고 임산부가 되었다가 지금 제 나이의 모습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제가 14년 동안 살았고 20년 넘게 집의 형태로 있던 그 집은 지금은 사라져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었는데 무의식은 자꾸 그 집에 연연합니다. 언젠가 그 집이 저에게 완전히 떠날 날이 오기도 하겠지요. 그땐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어릴 적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몹시도 허름하던 집이 사랑이 넘치는 집으로 변하는 모습을 자주 시청하던 기억이 납니다. 발랄한 배경음악과 함께 마술처럼 바뀌던 집과 그 집에 거주하던 가족들의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멍하니 바라보다 예쁜 집과 이층 침대가 가지고 싶어 사연을 보내고 싶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 프로그램도 없고 예쁜 집에 함께 살고 싶었던 저의 가족도 해체되었지만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갖는 기대는 지금도 큽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청소합니다. 남편과 제가 만든 집이라는 공간이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병적으로 정리하고 쓸고 닦으며 어린 시절 저의 결핍을 채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도 이 결핍을 채우지 못하겠지만 쓸고 닦는 일 외에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아이가 “엄마, 집이 편해서 좋아요”라는 말을 하더군요. 불안한 사람을 엄마로 둔 아이에게 편하다는 말을 들으니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불안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불안이라는 물이 제 몸에서 새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이도 내 불안에 젖으면 어쩌나 애가 탑니다. 그러나 아이는 제 걱정과 다르게 강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제 속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에게도 웅크린 몸을 일으켜 씩씩하게 지내라고 말해 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제 역할을 해 주지 못한 집과 부모님 대신 이제는 제가 제 속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아이를 지켜줄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기쁘고 안심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