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Jul 08. 2023

밝은 서울과 다른 거울

이름에 대한 편지, 이경

    꼼짝없는 여름입니다. 그래도 공기가 맑은 날이 자주 이어지니, 이따금 창문을 활짝 열고 얇은 커튼을 살짝 쳐 놓은 후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곤 합니다. 플레이리스트에는 제가 오래 좋아해 온 가수가 지난해 발표한 앨범의 곡들이 빼곡합니다. 


    모든 노래와 가사에 좋은 구석이 있었지만 타이틀 곡의 ‘그대만 아는 그 이름 가져가지 마세요. 아무 들꽃은 싫어요’라는 가사가 유난히 귀에 꽂히더군요. 그 가사를 쓴 이는 몇 년 전부터 좋아하게 된 한 그룹의 래퍼입니다. 피처링을 하면서 자신이 부르는 파트의 가사를 직접 쓴 것일 텐데 좋아하는 가수들이 함께 완성한 곡을 듣는 기쁨은 꽤 큽니다. 당사자도 아니건만 뿌듯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즐기는 느낌이니까요. 


    이 노래를 필두로 한 11곡의 노래는 ‘변하지 않는 연약함에 대한 노래’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앨범을 프로듀싱한 가수 본인은 스스로를 ‘여전한 채로 더 자랐습니다’라고 말하고요. 저는 그의 소개문을 읽었을 때 약간의 저릿함을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제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특별히 싫어하지도 않았습니다. 날 때부터 불려 왔으니 그저 타고난 손이나 귀의 모양과 같이 생각했을 뿐이었죠. 제 이름을 직역하면 ‘밝은 서울’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사람 이름이 왜 서울이냐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 서울을 뜻하는 한자에는 ‘크고 높은’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십 대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제 이름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일 일이 없었으니까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니는 동안 제 이름은 동년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아주 흔하지도, 어떤 느낌을 선명하게 주지도 않는 이름이었습니다.


    저의 이름에 대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두 번째 대학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유희 씨를 만났던 바로 그곳이지요. 대학에 다시 가기로 한 것은 나름대로 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들어간 만큼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성별도 나이도 친밀함도 달랐던 그 학교의 여러 친구들은 제 이름을 부르고, 저의 미욱한 증거물에 대해 말해주곤 했습니다. 자주 신랄하였으나 가끔은 다정한 희망을 주는 것이었지요. 이름을 불리는 일이 그토록 두렵고 설레고 유의미했던 일상은 처음이었습니다.      


    유희 씨, 스스로에 대해 불안으로 가득하지만 끝내는 그 불안을 밀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고 써준 적이 있지요. 저 역시 지난 편지에 썼습니다만, 자주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떨며 사는 사람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욕심과 낡은 자격지심이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몽상에 빠져 실천할 시간을 갉아먹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거대한 몸과 빈약한 지식도 부끄러워하지요. 제 이름이 가치 없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가난과 병을 얻은 채 오래 살까 봐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케케묵은 감정입니다. 이십 년 전에도 저는 이런 감정에 압도당해 있었고 여전히 발목 잡혀 있습니다. 다만 그때보다 자란 저는 감정에 완전히 깔려 죽지 않도록 발버둥을 치곤 합니다. 지나친 것들을 뒤져 새로 의미를 부여하고, 다가올 것들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 생각하면서요. 저도 여전한 채로 더 자란 사람인 셈입니다.     


    ‘밝고 크고 높은’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의 주어를 인생으로 남몰래 생각하는 것도 그런 것 중에 하나입니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도 있었고, 지나고 보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일들도 있었으니 남은 인생에서 조금 더 좋은 결과물 하나 정도는 빚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편지를 주고받기로 하면서 제가 청한 이름이 있지요. 당신께 보내는 이 편지들이 어느 순간에는 일상과 조금 다른 풍경으로 삶의 한 면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기 바랐습니다. 친애하는 유희 씨. 유희 씨는 스스로 지은 제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주는 친구입니다. 오래도 알아왔지만 정작 세세한 것은 많이 알지 못한 사이이기도 하지요.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알게 될 것은 그보다 더 많겠지요? 이십 대 초반의 그날들처럼 이 편지를 쓸 때면 욕심이 나고, 쓰고 나면 약간 부끄럽지만 그래도 쓰고 있다는 성취감이 새싹처럼 돋아납니다. 저는 연약한 이 감정과 이름이 조금 더 튼튼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매 편지마다 다정하게 적힌 이름이 끝내 아무 들꽃이 되지 않기를, 유희 씨가 불러주는 이름이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전 06화 어린아이가 살고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