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에 대한 편지, 이경
유희 씨, 창문을 여니 콧등에 찬바람이 닿는 날씨가 됐습니다. 감기를 조심해야 하는 때가 됐으나 다행히 지난해 초에 코로나에 걸린 이후로는 감기를 앓은 적이 없군요. 유행 끝물에 걸렸던 탓에 걸리기 직전까지는 주변 지인들과 그런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은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는 안 걸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차례가 오지 않은 것뿐이라던 말이요. 어쩌면 괜찮겠지, 아니겠지 생각도 했지만 정말 저에게도 차례가 왔던 셈이지요.
생각해 보면 스물아홉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아홉수’를 걱정했던 것은 스물여덟이었지요. 내년에는 스물아홉인데, 이십 대가 끝나가는데 어쩌면 좋을까. 그 생각을 일 년 내내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안정적이지만 불안했습니다. 저는 주기적으로 월급이 들어오는 직장에 다니면서 연애도 하고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살아 공과금이나 방값이 나갈 일도 없었고요. 그런데도 온갖 상황이 버거웠지요. 비전을 찾을 수 없는 아주 작은 회사에서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고객사를 상대하는 것, 지나치게 불어난 몸집과 몇 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남자친구, 이런저런 이유로 불편한 마음을 숨길 새가 없는 좁은 집, 너무 더디게 올라가는 통장 액수 등등이 말입니다.
겨우 손에 쥔 열매 한 움큼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있다가 얼마 되지도 않는 가능성마저 전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 올라왔습니다. 공포였습니다. 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지루한 일과를 보내면서 속으로 덜덜 떨기 일쑤였지요. 이대로 볼품없이 시들어가는 건 아닐까. 뭔가를 이뤄낼 것 같았던 느낌은 그저 느낌일뿐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저는 운동과 폭식을 반복해 가며 그 생각을 몰아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스물여덟 살에 말이죠.
막상 그토록 두려워하던 스물아홉 번째 해에는 담담히 일을 치렀습니다. 어느 날 저의 상태를 최대한 건조하게 표현해보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이, 몸무게, 통장에 찍혀있는 돈, 회사의 규모와 월급 액수, 현재 상황 등등을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갔습니다. 어떤 수사도 없는 짧은 단어와 숫자가 획을 날카롭게 세우고 늘어진 마음을 썩둑 잘라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에 저는 지난한 연애를 끝냈습니다. 싸움과 지친 마음, 의무적인 다정함은 금세 털어낼 수 있었지만 마음 밑바닥에 남은 계절을 긁어내는 일에는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 와중에 이직 준비에 몰두했고 공백 없이 더 큰 회사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스물아홉부터 저의 커리어에 꾸준히 새로운 내용들이 추가되었지요. 그 몇 년의 동안 저는 롤러코스터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내리 꽂히는 기분을 자주 느껴왔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제가 아홉수를 겪었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가 없군요. 큰일을 도모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하는 그때에 저는 그전까지 생각지 못했던 일들을 저지른 셈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만하면 아주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변화무쌍했던 이후의 삶에서 생긴 작고 숱한 상처를 생각하면, 거쳐오는 과정이 있었기에 이만큼 나아졌다는 생각은 그저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어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괜찮다가 좋았다가 종종 그럽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유희 씨의 스물아홉이 어땠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어떠했던가요. 우리에게 또다시 올 아홉수는 또 어떨까요. 때가 돼야 알 수 있는 질문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사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닐진대 무게가 가볍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겠습니다. 모쪼록 지난 아홉수보다는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좋은 일 한 두 개쯤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내내 건강하십시오. 그때보다 더 자주, 더 많이 안부 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