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Oct 18. 2023

독해질 이유

교복에 대한 편지, 유희

   이경 씨, 긴 장마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를 견디고 무탈하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인지 열감기를 앓는 아이를 병간호하며 일주일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주말을 기점으로 회복했고, 며칠 집에만 있던 아이를 데리고 나와 함께 영화 '엘리멘탈'을 보았습니다. 아이가 저와 함께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영화를 보니 아이가 제법 컸다는 게 새삼 실감 났습니다. 언젠가 이 순간을 간절히 그리워할 것 같아 애틋한 마음이 들었고요. 아이를 낳고 기르며 떨어진 면역력에 자주 몸이 아픈 신세지만 엄마가 된 것이 기뻤습니다. 이런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지난 힘들었던 시간에 미리 알았더라면 더 잘 살아낼 힘이 생겼겠지요.


   몇 해 전 이경 씨에게 제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이경 씨는 그 교복을 받아 이경 씨가 하고 있던 작업을 위해 사진을 찍었고, 그 교복 사진은 인터넷 기사에 올라왔습니다. 멋지게 찍힌 제 교복 사진을 보고 참 복잡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고, 굳이 제 SNS에 그 기사의 링크를 달아 놓기도 했습니다. 교복은 제가 가진 옷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옷인 까닭에서였습니다.

  이경 씨에게 빌려주었던 교복은 제가 백일장에 나가 받은 상금으로 교복을 맞추는 가게에서 직접 산 교복이기도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저보다 세 살 많은 언니의 교복을 억지로 물려 입은 채 학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저보다 몸집이 작은 언니가 입던 작은 교복은 저에게 꽉 끼였고 그로 인해 교복을 줄여 입었냐는 오해를 받기 일쑤였습니다. 조용히 지내고 싶던 고등학교 생활은 어쩐지 교복으로 인해 더 꼬여가고 있는 것 같았고 새 교복을 입을 날만 손꼽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행히 그 바람은 고등학교 1학년, 교외에서 열린 백일장에 나가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운 좋게 상을 받게 된 대회에서 교복을 사고도 남을 만큼 상금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받은 상금으로 제 몸에 맞는 교복 재킷과 무릎을 덮는 치마를 산 후 안도했고 이후 교복은 저의 보물과 같은 옷으로 고등학교 시절 함께 했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는 교복을 이경 씨가 빌려 가서 멋지게 사진을 찍어준 것입니다. 이경 씨가 이런 저의 10대 시절 일을 알았더라면 조금 다른 사진을 찍어주었을까요? 알았든 몰랐든 이경 씨와 그 교복을 두고 좋은 기억 하나를 남길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처음 교복이라는 옷을 입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교복처럼 고등학교 생활도 어딘가 불편하기만 했고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똑같은 친구들과 한 반에서 지냈던 저에게 고등학교로의 입학은 전학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조금 큰 읍내로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니까요. 내내 한 개 반만이 있던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무려 반이 일곱 개나 있는 고등학교는 그 이유로 낯설고 두려웠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새로운 친구들 앞에서 말실수를 하거나 말을 더듬기도 했고요. 그곳에서 저는 여러 이유로 만만하고 이상한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새로 산 교복을 보고도 어디에서 난 것인지 묻지 않던 알코올 중독 상태의 어머니. 더 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스스로의 삶을 끊어낸 아버지. 저는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아이였습니다. 몸만 자라 있을 뿐 누군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던 고등학생이었지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저를 향해 수군거렸고,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그리웠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저는 교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듣고 있던 중, 담임선생님이 저를 급하게 불렀고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장 술에 취해 있을 엄마에게 달려갔지요. 엄마는 저를 심하게 다그쳤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잘 죽은 거라며, 자신은 가고 싶지 않으니 저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교복을 입은 채 울며 아버지에게 향해야 했고요.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내내 교복을 입고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견뎌냈습니다. 가기 싫은 학교지만 꾸역꾸역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고, 엉망인 집으로 가 주말이면 교복을 깨끗하게 빨았습니다. 교복을 입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교복을 입고 글을 쓰며 학교와 집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했습니다. 고작 3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고등학교 시기를 지나며 너무 많이 나이가 든 것 같았습니다. 


   교복을 입고 그 시기를 잘 견뎌낸 저를 잊지 않기 위해 저는 아직도 교복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저의 어느 한 부분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도 같고요. 그 시기도 지나왔으니 앞으로도 그리 녹록하지 않을 앞날을 잘 지낼 작정입니다.

  고등학교 때 저를 몹시도 싫어하던 한 아이가 제게 "난 쟤가 독해서 싫어."라고 하더군요. 저의 어떤 모습이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말은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이경 씨도 눈치챘겠지만 저는 정말 독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잘 살아남은 거겠지요.

   그 아이의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는 더 독해 지려고 합니다. 자신의 생을 마주 볼 수 있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 법입니다.  이경 씨에게 이렇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고요.  이 편지를 시작한 목적인 이전보다 나아진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쪼록 몸도 마음도 가라앉기 쉬운 여름, 이경 씨가 건강하게 지내고 있길 바랍니다. 

이전 09화 그 옷에서 흘러온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