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 대한 편지, 유희
시를 읽고 쓰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동화를 공부하며 시는 좀 멀리 두고,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지 종일 고민하고 있지요. 시를 생각하면 슬프고, 동화를 생각하면 마음이 간지럽습니다. 아마 제가 우울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엉뚱하기도 한 사람이어서 그렇겠지요. 이경 씨에게 편지를 쓰는 내내 남편이 그러더군요. "왜 이렇게 글이 우울해?"라고요.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둡고 우울하고 어딘가 펼쳐놓기엔 꺼려지는 글이란 걸 말입니다. 밝게 꾸며 쓸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습니다. 피와 고함, 울음이 난무했던 어린 시절을 햇살과 웃음이 가득하게 만들 수 없으니까요. 오랫동안 저를 지켜봐 준 친구들은 제가 울기만 해도 같이 울어 버립니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일을 과업처럼 여기는 사람인데, 친구들이 제 일에 울어버릴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편지를 쓰면서 이경 씨도 혹여나 함께 슬퍼하거나 제 어둠과 불안에 젖진 않았나 염려가 됩니다. 허나 지금은 과거보다는 오늘을, 오늘 보다는 내일을 위해 제가 나아가는 사람이란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혜순 시인의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라는 시집에는 “매일 태어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매일 태어난다는 것은 매일 죽는 것과 같은 말일 것입니다. 한참 그 구절을 읽으며 매일 태어나고 죽는 하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내일이란 얼마나 먼 세계인지도 느껴보았습니다.
사실 며칠 전, 저와 가까운 관계로 지내고 있던 사람이 저를 끊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주 보고, 자주 연락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더군요. 예상하지 못한 연락에 당황했지만 담담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관계든 제힘만으로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만 일을 넘게 태어나고 죽으며 몸과 마음에 내공이 생겨나고 있는 듯합니다. 내일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무슨 상황이든 저를 잘 지켜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게 또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며 저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기들은 내일을 모르기에 잠들기 전 몸부림치며 울기도 하지요. 잠들면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올 거야, 아가. 그러니 푹 자렴. 고운 꿈을 꾸렴.”
아기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해 주면 아기는 잠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일’이란 살아 있다는 것이며 ‘내일’이란 이토록 처절하게 가지고 싶은 본능입니다. 첫 조카가 태어나고 제 아이가 태어난 날에도 저는 슬픔이란 단어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주먹을 꽉 쥐고 우는 아이에게서 말입니다. 아마도 부모라는 타인을 통해 생(生)하게 된 작고 여린 존재에게 느끼는 연민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 우는 아기들. 빨간 덩어리 같은 얼굴은 삶의 얼굴일 것입니다.
최근에 겪은 일처럼 사람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결핍을 겪고, 상처를 받고 회복합니다. 그래서 좋은 일과 나쁜 일, 기쁜 일과 슬픈 일도 사실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호한 세계에서 그저 잘 살아내면 됩니다. 아기 때는 내일을 알지 못했지만, 한창 자란 후 내일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도하고 때론 기뻐하기도 하는 아이처럼 말입니다.
이경 씨, 어느덧 우리의 편지가 마지막이라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편지를 시작할 때 저는 굉장히 불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불안을 제법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대가 저에게 쏟아내는 분노를 제 안으로 들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편지를 쓰며 보낸 내일이었던 어제를 이경 씨에게 보낸 편지 속에 적어둔 덕분입니다. 만약 이렇게 이경 씨와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덜덜 떨고 있는 사람으로 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경 씨, 이번 편지가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내내 함께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항상 표현했지만 이번 편지에서는 ‘고맙다’라는 말에 더 특별함을 부여하고 싶습니다. 함께 편지를 적어내는 시간이 기뻤습니다. 이 고마움과 기쁨 때문에 이 편지가 가고 한참이 흐른 뒤에 불쑥 이경 씨에게 편지를 쓸지도 모르겠네요. 이경 씨의 편지가 그리워져 허겁지겁 찾아볼지도 모르겠고요. 편지를 통해 서로의 마음 안부를 한 두 번 더 나누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그때의 편지가 이경 씨에게 가기 전까지 매일매일의 내일을 잘 살아내기를 바라겠습니다. 잘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