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에 대한 편지, 이경
유희 씨, 한 주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토요일을 마주하는 이 고요한 시간이 저는 참 좋습니다. 내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략 예상이 간다면 더욱 마음이 편하고요. 내일은 일어나 빨래를 돌린 후에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가 친구와 함께 이른 점심을 먹겠습니다. 저녁에는 최근에 발을 들인 독서 모임에 갈 텐데, 그전에 회사 일을 틈틈이 체크할 테고 늦은 밤 잠들기 전에 한번 더 볼 예정입니다. 일요일은 집에서 쉬다 일을 하다 밥도 챙겨 먹겠군요.
이렇게 가까운 내일은 슬슬 그려보면서 미래라는 말 앞에서는 형태 없는 어둠을 떠올립니다. 원래 우리가 쓰기로 했던 편지의 주제는 ‘미래’였지요. 다시 생각해도 참 커다랗고 막연하여 겁이 나는 단어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고 추상적이라는 것이 적합한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꿈, 사랑, 마음. 이런 단어들 앞에서 겁을 먹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예전에 면접을 볼 때 제가 답하기 가장 어려워했던 질문도 미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5년 뒤에 이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10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와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면접을 볼 때면 으레 나오는 상투적인 질문에 대답 역시 상투적이었습니다만 저는 매번 진땀을 흘렸습니다. 잘 알든 모르는 내뱉는 말로 순식간에 평가당하는 자리라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매번 정착할 자리를 찾아다녔던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이 그랬지요.
요즘도 면접관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잘은 모르지만 작년과 올해를 지나면서는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저는 여러 현상들로 인해 최근 몇 년 간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던 어떤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당연함 같은 것을요. 세상일이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을 지레 짐작하는 것과 예상치 못했던 역병, 예상치 못했던 전쟁 같은 것들로 일상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불확실성'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와닿는 때가 없습니다. 어쩌면 미래는 그 불확실함을 이기고서 움켜쥐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잡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상상하지 못합니다. 무언가 당연하게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것은 예전부터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해온 말이 “몇 년만 지나면 대체 어디서 뭘 할지 모르겠어.”라는 말이었으니까요. 객관적인 사실로 미루어 생각하자면 끊이지 않는 이직 생활에서 조성된 불안감에 기반하는 것일 겁니다. 심상적으로 말하자면 거부당한 기억을 오래 붙들고 있는 선천적 불안과 우울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요. 그래도 불안을 오래 품고 있다 보면 한 가지 쓸모는 있습니다. 가능하면 저의 불안이 조금이라도 덜 실현되도록 대비하고, 뭔가 작은 것이라도 준비하려는 제스처를 취한다는 것이지요. 몇 번의 내일, 최소한 당장 한 번의 내일 정도는 제가 떨지 않도록요.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런 준비를 하는데 힘을 보태줍니다. 그 사람들과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갈지 상상해 보는 일은 더운 땀을 식히는 바람이고 시린 발에 쬐는 난롯불입니다. 스스럼없이 만나자고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속 시원하고 따뜻한 일인가요.
우리 내일 만나기로 할까요. 저는 유희 씨에게도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찬 바람을 피해 따뜻한 음식점에서 만나 맛있는 식사를 하지요. 따뜻한 날씨가 올 언제가 소풍도 가요. 그 내일에 넓은 공원을 찾아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음식을 늘어놓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내일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오늘을 조금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