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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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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담 Jan 28. 2018

도망자

서늘하다.

차가운 말들을 오물거리는 입들이 벽에 있다.

실체가 없는 입들이 천장에 있다.


죄의 값이라면

심판하는 입들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러나 나는 한낱 본보기로

그저 이 입, 저 입 옮겨다닐 뿐이다.


죄는 변하지 않는다.

보이지만 실체가 없는 것과

안 보이지만 실체가 있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따라서 죄인은 고통마저 부끄러워야 한다.

따라서 죄인은 고통마저 원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비겁하게 고통을 잊자.


세계에서 색을 걷어버리고

앞만 보며 땅만 보며 걷는다.

도망자의 말로는 대개 비참하다.

추격해오는 죄책감은 있어도

달려와줄 꽃마차는 없다.

칼날처럼 예리한 길을 홀로 걷는다.


내일도 눈을 떠야 하기에

발걸음을 더디게 뗀다.

귀를 여는 때는 수많은 내일 끝에 올 것이다.

입이 트이는 때는 내일이 오지 않아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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