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AE일까?

by For watermelon

AE(Account Executive) : 직역하면, 고객 담당자


사전적 의미로 AE는

고객사(광고주)와 대행사 내부 조직 간의 소통을 조율하고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직무를 뜻한다.


하지만,

현업에서 AE가 감당해야 하는 일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저 건조한 한 줄의 텍스트로 이 직업을 온전히 표현하기란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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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온라인에서 흔히 떠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것도 제가 하나요? 저것도 제가 하나요?"라고 묻는 저 웃픈 짤이

AE의 본질적인 역할을 훨씬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광고의 알파이자, 오메가, 그리고 빈틈을 메우는 자


물론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나 1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광고 시장의 판도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흔히 우리가 아는 '광고회사에서 만드는 광고'는

결코 혼자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광고주를 비롯해 내부의 기획팀, 제작팀, 매체팀, 지원팀, 그리고 외부의 프로덕션과 각종 외주업체까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히고 설켜 협업을 하고,

그 과정에서 지리멸렬한 수정과 조율을 수차례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광고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광고가 만들어지는 각 단계마다 이해관계자들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지만,

AE는 그 프로젝트의 가장 처음을 열고 가장 마지막을 닫는 사람이다.


전체적인 일의 흐름을 꿰뚫고 있어야 하며,

각 부서와 단계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빈틈'을 몸으로 메워야 한다.


그렇기에 AE는 넓고 얕게라도 다양한 분야를 할 줄 알아야 하며,

경계 없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때그때 마주하는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역할을 소화해 내는 팔색조처럼 일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당신은 어떤 유형의 AE입니까?


AE가 커버해야 하는 업무의 스펙트럼이 이다지도 넓다 보니,

본인의 강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의 AE가 탄생하곤 한다.


한때 우리 회사 내에서는 AE를 게임 캐릭터에 비유해

'당신은 어떤 AE 유형인가'를 묻는 소소한 테스트가 유행하기도 했었다.


**딜러형 AE

날카로운 전략적 사고와 기획력을 앞세워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타입


**탱커형 AE

광고주의 험난한 요구나 외부의 압박을 최전선에서 방어하며 핸들링하는데 최적화된 타입


**힐러형 AE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갈등을 부드럽게 중재하며 팀워크를 이끌어내는 타입


물론 세상 모든 AE의 모습을 이 세 가지 틀 안에 완벽히 가둘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AE라는 직업이 천편일률적인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에 머물지 않고,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과 개성을 듬뿍 담아낼 수 있는

매력적인 직무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꽤나 유의미한 분류라고 생각한다.




스타일이 없는게 진짜 문제지


이 일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본인이 어떤 모습의 AE를 지향하는지

스스로를 치열하게 관찰하고 그 방향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나 역시 그 길을 찾는 과정에서 크게 방황했던 적이 있다.

당시 직속 팀장님과 업무 스타일이 너무나도 달라서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팀장님의 방식에 나를 억지로 구겨 넣으려다 보니 매일이 삐걱거렸고,

툭하면 ‘내가 이 일에 소질이 없는 건가?’, ‘내가 틀린 건가?’ 자책하며

스스로를 한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잔뜩 위축되어 있던 나에게,

당시 모시던 본부장님이 지나가듯 툭 던져주신 말이 하나 있다.


"

스타일이 안 맞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돼.

스타일 맞는 사람들끼리 짝지어 매칭해주면 되거든.

오히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자기만의 스타일 자체가 없는 거지.

"


이상하게도 그 무심한 한마디가 당시의 나에게는 엄청난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내가 틀린 게 아니구나.

그저 나와 팀장님의 결이 다를 뿐이고,

나에게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거구나.

나는 내 방식대로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구나'라고

인정받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관계와 업무 속에서 치이고 있을,

매일 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라며 자신만의 길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후배 AE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당장 눈앞에 쏟아지는 일들을 쳐내고

이 사람 저 사람 입장을 조율하다 보면,

정작 '나'라는 사람은 닳아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수많은 부딪힘과 상처의 시간들은

결코 당신을 갉아먹기만 하는 무의미한 소모전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정이야말로 내 손에 어떤 무기가 가장 잘 맞는지,

내가 어떤 싸움에 능한 사람인지

찾아가는 소중한 제련의 시간이다.


그러니 정답 없는 험난한 현장 속에서 기꺼이,

그리고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져보았으면 한다.


자신이 날카로운 기획력을 가진 딜러인지,

묵묵히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탱커인지,

엉킨 실타래를 푸는 힐러인지.

혹은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돌연변이형 무언가인지.


남의 옷을 억지로 껴입지 않아도 괜찮다.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며,

당신만의 단단하고 고유한 스타일을 멋지게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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