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fter rea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yner Jan 20. 2019

당신의 죽음을, 위하여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1. 죽을 사람을 위한 파티

역사상 우리 인간에게 죽음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 두려운 이벤트를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사자(死者)에 대한 예를 갖추고 그 슬픔을 견뎌낼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중에는 사후의 ‘천국’을 이야기하며 축복 이벤트를 열기도 하고, 때로는 '돌고도는 인생사'를 이야기하며 환생에 대한 기대를 가져보기도 한다. 문제는, 죽은 자를 위로한다는 장례식 조차도 사실은 떠나는 그를 위함이 아닌 남겨진 자들을 위한 위로와 수용의 방법론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불편함을 전면적으로 반박하고, 떠날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반가웠다.  


그런 면에서 최근 유행한다는 '생전(生前) 장례식'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길고 짧은 시간 감사했던 사람들과 마지막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보낸다는 측면에서는 이게 훨씬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떠나고 없는 영정사진 속 이를 그리워하기보다는, 투병의 초기에 혹은 어떤 사망의 시그널이 감지되는 때에, 좀 더 가능하다면, 자발적인 ‘존엄사’를 앞두고 그동안의 인연들에게 감사와 행복의 인사를 하는 편이 더 미래의 사자를 위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주하기 불편하다고 해서 미루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전에 대응하는 전략이 갖는 장점은, 죽음이라는 중차대한 이벤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곧 떠나는 이를 위해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간의 추억을 반추하는, 정말로 떠날 사람을 위한 그런 정중하고 의미 있는 행사로 바뀌어야 한다.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입학식과 졸업식을 하지 않는다. 파티의 주인공은 남겨진 사람이기보다는 떠날 사람이어야 한다. 




2. 사실, 더 불편한 건  따로 있다 (Out of topic)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와 같은 일상적 의문들 뿐만 아니라, 그보다도 훨씬 이전의 대전제에 대해 사실상 우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교적 큰 불만 없이 주어진 일생을 묵묵히 보낸다. 자기만의 목표와 방향성을 정하고 노력하고 애쓰고 또 실패와 좌절을 맛보다가 성공의 행복을 누리기도 하면서, 나름 그것들이 인생의 의미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쌓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누가 이 삶을 주었고, 그 목적은 무엇인가? 그냥 일단 태어났으니 그 연유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는 걸까?

사실 이 정도면 너무 억울하다. 판이 막상 벌려지니 분위기상 일단 뭔가를 하고는 있다만, 이 원초적 불안에 대한 해결 법은커녕 정보조차 너무 한정적이어서 이제는 관성처럼 그 누구도 물음을 던지지 않는, 그런 무대 위 꼭두각시가 되었다. 말이 좋아 무대고 공연이지, 누가 외딴 행성에 만들어놓은 감옥일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대단히 순종적이다. 무엇을 믿느냐가 인생을 결정하고 가치관을 형성한다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 근원적 질문에 도전하기엔 게임이 안 된다는 계산 하에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몸부림의 결과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 불편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적절한가. 아니면 역시 또 그 전제는 건
드리지 않은 채 그 이후의 방법론만을 건드리는 건 아닐까.


사실 애초부터 책 제목이 ‘우리는 왜 사는가’ 혹은 ‘우리 존재의 근원적 의미’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므로 내가 번지수를 잘못짚었는지 모른다. 엉뚱한데 와서 화풀이를 하는 것 같긴 하나, 그럼에도 책 전반에 깔려있는 ‘일단 우리는 태어난 마당에 끝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자꾸만 불편하게 느껴졌음에는 틀림없다.


이 감옥에 왜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안에서 의미를 찾자니. 여간 찝찝한 게 아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해소 불가능한 우리 존재의 비극에 대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변하지 말자, 그 광기 어린 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