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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Jan 18. 2019

우리 변하지 말자, 그 광기 어린 투정

- 쿨(cool)의 태동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정재찬]


쿨하고 뒤끝 없는 성격, 떠난 이에게는 더 이상 질척이지 않는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요즘이다.

다만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다. 어릴 적 수업시간에 등장하던 시나 소설뿐만 아니라, TV 가요 노랫말 속에서도, 누군가를 향한 변치 않는 ‘일편단심 민들레’는 언제나 옳았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사수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였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야말로 상식이자 당위로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래, 그러던 때가 있었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반갑고 낯선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 당시 ‘그 마음, 변하지 않을 것’은 곧 ‘웃어른을 공경하자’, ‘환경을 보호하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는 말과 동의어였다. 어떻게 그런 분위기가 가능했을까? 누가 왜 어떤 연유에서 그 가치를 그토록 수호하려고 했을까.


사랑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를 만들어낸, 그 시대의, 순수해서 두려울 것이 없던, 사랑이 주는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날카로웠던 그들이 고안해낸, 유치하지만 끄덕여지는, 당시로서는 최선이었을지 모를 ‘지혜’였을지 모른다. 이겨내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힘과 권력’에게, 이건 반칙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정하고, 앞으로 이걸 어기는 누군가는 도덕적 비난과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이른바 선전문구를 뿌려댔다. 각종 노래와 문학과 수군거림으로, 이를 어기는 자들을 응징하고, 이들로 인해 아픔 받는 '동료'들을 동정했다. 고통을 참아낼 자신이 없던 그들은 자신 스스로를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장벽은 오래가지 못했다. '범법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이 규칙을 만들어낸 자신들조차도 흔들리는 마음을 경험했고, 하나 둘 빠져나간 자리에는 공백과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변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자기 방어로 그치지 않았고, 자연과 인간 본연의 특성과 존재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계절도 변하고 자연도 변하고 이 우주 만물이 변하는데, 사랑이라고, 아니 사랑 따위가 안 변하겠냐고. 이런 발상은 유아적이다. 사랑의 이상이 아니라 신화에 가깝다."

"모든 것이 변하는 거라면, 변하는 사랑인 은수가 문제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사랑인 상우 자신이야말로 문제다."

"그러고 보면 흐르는 바람 따라 이리 변하고 저리 변하는 것이야말로 변절이 아니라 순정이 아닐런가"


시간은 흘렀다. 이제는 떠나가는, 변해가는 순정을 더 이상 붙잡을 명분이 부족해진 우리들은, ‘마음의 변화’라는 장엄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서둘러 새로운 대안을 마련했다. 변절에 대한 마녀사냥과 일편단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쿨한 인간’이 태동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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