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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yner Jun 02. 2021

원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니까

원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른데도

원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니까


너의 사랑은 사랑이 맞네 아니네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게 보이느니 마느니

이 순수의 욕망을 감히 너 따위가 알 수 있겠니 뭐니 

점점 산으로 가는 이야기들


이 중심에는 바로

원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는 문장에 있다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아무리 이 시대의 '뉴 노멀식 사랑'이 가혹하게 후려쳐진다 해도,

적어도 통상적인 의미에서 사랑이 갖는 지위는 그 정도는 된다


사랑은 그냥 원하는 것과 다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는지는 회의적일 수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그 후려쳐진 사랑이 가장 마지막에 기댈 곳이 

두어 평 남짓되는 골방 따위일지언정,

내가 사랑에게 지은 빚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따위가 되려는 게 아니라,

아무도 이 후려쳐진 사랑을 돌보지 않을 때,

더 이상 누구도 흔해빠진 사랑 타령에 귀를 기울이는

클리셰에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그래도

그래도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느니 마느니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래도 내가 지은 빚에 대한 도리라 생각하므로

내가 어느 시절 어느 순간에 느꼈을 그 감사함에 대한,

미처 당시에 하지 못했던 

그 환희에 대한 감사함과

그 전율에 대한 고마움과

그 고통에 대한 절실함과

그 양심적 선언에 대한 절대적 존재로서의 경외에 대한

일말의 숙연함을 표할 수 있는 마음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물이 되었고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기계가 되었고

내가 얼마나 냉정한 악당의 마음이 되었건 간에

내가 한 때 

나를 나로서 

나를 사랑 따위를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존재로서 대우해 준 것에 감사하다는

그 아주 작은 마음 표시의 티끌이 될 수 있음을 기대하며



우리 누구나가 그러했듯

나 또한

사랑에 진 빚에 

이대로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으므로



고이 삼가는 마음으로

나는 사랑에 

예를 표하는 바



사랑이 얻어 처맞고 다녀 

구석진 뒷골목의 볼품없는 혹은

나아가 추한 그 무엇의 모습으로 심판의 화형을 당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고작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그 앞에 서서 힘없고 작은 목소리로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얘 그렇게 나쁜 애 아니에요 따위의


안 하느니 못한 대변인 역할에

나는 또 한 번 그에게 빚을 지게 되는 결말이 예상되고 말기 때문에



나는 사실 사랑의 편이면서도

사랑의 편임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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