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출근보다 늦은 시간이지만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아침 지하철을 탄다. 처음 방문한 도쿄에서 알차게 보내기 위함이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출퇴근길 항상 함께하는 이어폰을 잠시 빼놓고, 이 공간을 눈과 귀로 느껴본다. 훔쳐볼 의도는 아니고 도쿄의 직장인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나 슉슉 눈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튜브나 소셜 미디어의 영상을 감상하고, 웹툰을 보고, 밀린 드라마를 본다. 간혹 책을 읽는 사람이 있지만, 비율은 비슷하다.
서울의 2호선이나 9호선처럼 이미 가득한 객실에서 조그만 틈이라도 만들기 위해 인파들 사이를 헤집는 사람은 없다. 아니 그 정도로 혼잡하지 않아, 이 한 몸 보존하기는 더 편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하철이 크게 흔들리지도 않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없었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긴장의 끊을 놓지않고 방송에 집중한다. 일부러 복잡한 환승역에 내려본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걸어간다. 누가 불러도 뒤돌아볼 것 같지 않은 표정이다.
다음 열차를 타기 위해 바닥과 천장에 달린 안내판에 시선을 고정하여 나의 길을 간다. 지난 며칠 동안 지하철을 이용한 탓에 약간의 익숙함에 웃음이 난다. 특히 가장 많은 환승을 위해 머물렀던 우에노역은 마치 고속버스터미널 역처럼 느껴졌다. 지하철에서의 익숙함과 편안함은 출구를 나오면서 설렘과 호기심으로 변한다. 그저 동네 골목길임에도 각자의 집 앞에 꾸며놓은 화단을 보며, 걸음을 멈춘다. 작년 사진 수업 때 만든 책이 생각난다. 여러 동네의 골목을 다니며 다양한 풍경을 촬영하던 때를 추억한다. 참 열정적이었다. 셔터를 멈추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열정을 찾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고, 조금의 에너지는 얻을 수 있었다.
어느덧 저녁 시간이다. 도쿄 직장인의 출근길을 함께하며 시작한 하루가 퇴근길도 함께하며 마무리하게 되었다. 잠깐 도쿄역에 들러 야경을 눈과 렌즈로 담고, 괜히 궁상을 떨어본다. 상자 속에 넣어두었던 기억과 생각이 터져 나오면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럴 때는 다시 걸어야 한다. 남들보다 두 배로 빠르게 걷다 보면 어느새 다시 상자 속으로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