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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Dec 10. 2018

<인생 후르츠>

삶을 바라보는 생각이 멋있어서, 가슴 설레이는 영화

차근차근 천천히
출처: 영화 <인생 후르츠>

삶을 바라보는 생각이 멋있어서 가슴 설레었고,

이제껏 우리가 무얼 놓치면서 살았는지 알 것 같아 자꾸만 눈물이 나는 영화였다.


90+87=177

90세 건축가 할아버지 '츠바타 슈이치'와 87세 어떤 요리든 척척 만들어내시는 할머니 '츠바타 히데코'는 여유로운 자연을 머금은 작은 집에서 과일 50종과 채소 70종을 직접 재배하며 살아간다. 이 노부부의 삶은 시끌벅적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감자 샐러드, 생선구이, 소고기 스튜 등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따끈따끈한 집밥은 하루를 시작할 따뜻한 온기를 선사하고, 체리 요거트, 푸딩, 딸기 케이크 등 손수 만든 디저트는 한 번 맛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달달함을 채워준다. 히데코씨가 요리를 하면 슈이치씨는 마당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밭에다 꽂을 노오란 팻말을 만들고, 귀여운 메시지를 정성스럽게 새긴다. 맥가이버처럼 사랑스런 손녀딸을 위한 인형의 집도 뚝딱 만들어내시는 슈이치 할아버지. 이 두 사람이 그려내는 슬로우 라이프 속 아기자기한 그림 하나, 스윗한 말 한마디와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 위로 그리운 목소리 하나가 우리의 가슴에 맺힌다. <걸어도 걸어도>, <어느 가족>을 비롯한 다수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과 함께 했던 일본의 국민 어머니 키키 키린이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맡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나긋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힘이 있다. 키키 키린의 진솔한 목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츠바타 노부부의 삶은 그저 노년의 삶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고민해왔던 인생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꽤 괜찮은 길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바로 여기, 영화 <인생 후르츠>가 우리가 꿈에만 그리던 일상 속으로 안내한다.

출처: 영화 <인생 후르츠>

 슈이치씨는 감자요리를 좋아하고, 히데코씨는 감자요리를 싫어한다. 할아버지는 평범한 가정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할머니는 토스트에 잼을 발라 식사를 한다. 서로 다른 취향이 한 테이블 위에 놓여있듯, 서로 다른 점은 그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자리를 잡아간다. 우리의 삶은 노부부가 이리저리 식탁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보는 모습과 닮아있다. 어느 한쪽에 맞춰가지 않아도, 어느 한쪽의 희생을 바라지 않아도 충분하다. 저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함께 바라보기 위해 함께 발 맞춰 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다시 한번, 90+87=177

두 사람이 만난다는 건 그들이 함께 살아온 세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두 사람만의 몇십 년의 세월을 세어보기 이전에, 각자가 걸어왔던 시간, 취향, 시선, 삶 또한 생생하게 살아서 177이라는 긴 시간에 깊은 향기를 남긴다. 서로의 소중한 시간들이 무뎌지지 않고 온전할 수 있을 때에 함께하는 행복한 삶도 꿈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출처: 영화 <인생 후르츠>

영화 <인생 후르츠>에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1955년, 나고야 교외 시골 마을 고조지에 뉴타운 도시계획을 맡았던 슈이치씨는 자연친화적 공간을 설계하기도 했다. 산등성이에 집을 짓고, 땅을 모두 쓸 필요 없이 여유를 두었다. 바람이 지나가고, 숲을 만들 수 있도록. 안타깝게도 그의 꿈은 실현되지 못하고 고조지에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버렸다. 그리하여, '작은 숲'처럼 우뚝하게 남아있는 이 츠바타 집은 그가 세상에 던지는 미련이자 자연에게 바치는 미안함이었으며 다가올 미래에 남기는 작은 희망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슈이치씨에겐 꿈에 그리던 건축 설계 의뢰가 들어오게 된다. 처음 제안이 들어왔을 때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고 빈 도화지 위에 꿈의 공간을 그려나갔다. 아마 마음속으로 몇 번을 짓고, 허물었을 테다. 그가 이러한 건축 프로젝트들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고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그에겐 확고한 길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건물들을 바라보면 어쩐지 답답해 숨이 막힌다. 일정하게 똑같은 모양의 집들은 모두에게 똑같은 환경에서 살 것을 요구한다. 본디 사람은 모두 다르다. 다른 것들을 단순화, 획일화한다면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이 살아갈 곳은 못된다. 사람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살다 보면 무엇이든 하게 된다고 했다. 숲이라는 공간에서 조화롭게 제 것을 유지하며 숨 쉬는 자연처럼 제각기 다른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각자의 다름을 무너뜨리지 않고 서로의 색깔을 보듬어줄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이 조금은 살만 하지 않을까.


결국에는 '사람'으로 향한다. 슈이치씨가 세상을 떠나고도 츠바타 집에는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지난 일생에 있어서 그가 했던 말들이 귓가에 맴돈다. '그건 좋은 일이니까 하세요.' 만약 사랑했던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했을 법한 좋은 일들을 떠올리며 세상에 남은 자들은 보다 나은 삶을 가꿔나간다.



출처: 영화 <인생 후르츠>
바람이 불면 낙엽이 진다.

낙엽이 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를 맺는다.

차근차근 천천히.


낙엽이 지면 그게 끝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 끝이 오기 전에 하나라도 더 이루려고 너무 바쁘게 살았고, 불안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내레이션처럼 낙엽이 지고 비옥해진 땅 위에서야 비로소 싱그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법!


<인생 후르츠>라는 타이틀은 영화가 시작할 때가 아니라 끝이 날 때 등장한다. 어쩌면 우리는 파릇파릇하고 화려한 청춘을 인생이라 착각하고 그 끝을 너무 빨리 어림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끝을 생각하며 너무 서두르지 말자. 우리의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평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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