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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Dec 15. 2020

<마티아스와 막심>

보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사랑이 있단 걸 아는 영화

클로즈업 준비됐어?
출처: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

이 영화에서 클로즈업 준비됐냐는 말로 마티아스와 막심이 손으로 맞대는 프레임. 그때부터 이 영화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일상적인 청춘의 일면이 아니라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클로즈업으로 바라본다.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감정을 자비에 돌란은 놓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할 수 있고, 이미지에 쉽게 각인되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행위에 더욱 쉽게 매료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두 사람에게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키스의 순간은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해봐야 마티아스가 그 단편 영화를 감독했던 친구 동생이 사람들 앞에서 예고도 없이 영화를 공개해버렸을 때 창문에 비친 장면이 고작이었다. 자비에 돌란은 그 강렬한 키스의 순간은 가리고, 오히려 그 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형체가 없어서 쉽게 으스러질 수 있고, 남들에게 표현할 수도 없고, 또 자신에게 조차 혼란스러워서 불안정한 그 감정과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빛을 말이다.


어찌 보면 이 영화를 감독한 어린 소녀의 말처럼 이 키스하는 두 인물은 남자이지만 사실은 남자라는 성을 초월한 두 사람이라는 말처럼 키스라는 행위 자체 역시 표현의 외연을 넓혀보자면 사람 대 사람의 키스를 넘어서서 인간을 초월한 두 존재 자체의 입맞춤 그리고 그 뒤의 서로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서로 닮은 듯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어떤 전조는 뜻밖의 혼란을 주기도 한다. 호수가 생각보다 작았으리라 생각했을 테니 마티아스는 이른 아침 무작정 그 물속으로 빠져들었을 테다. 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주변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 키스도 실은 별거 아니라 생각했을 테다. 하지만 흔들리는 물침대일 뿐이라 생각했던 감정의 일렁임은 호수에서 길을 잃을 만큼 생각보다 깊었고, 한 없이 넓었다.


구석에 자리 잡은 화분은 원래 거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소하다. 모두가 쉬이 넘기고 마는 사소한 사건 혹은 감정 또한 있을 테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을 유일하게 눈여겨본 사람에게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뜻밖의 감정은 흙 투성이의 빈자리를 선명하게 남긴다. 그 자리가 화분이 있던 자리라고 누가 알아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알아보니까. 그게 그냥 ‘자리’가 아니라 ‘빈자리’라는 것을 내가 알아보니까. 그 자리가 실은 원래 무언가 차지하고 있었음을 아니까 그게 지금 아무것도 없어도 없는 게 아니다.


마티아스는 왜 3주 전에 이미 받았던 추천서를 막심에게 주지 않았나. 그 뜻이 무엇이었든 간에 막심이 통화로 그 사실을 전달받고서 울먹이는 표정은 쌓여있던 불안함을 털어내는 안도 같았다. 마티아스와 막심이 영화 촬영을 위한 키스 이후 오랫동안 제대로 대면하지 않다가 막심의 송별회 파티 날 숨겨둔 감정이 폭발하면서 작업실 창고에서 격정적인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을 멀리하려는 마티아스에게 막심은 ‘널 이해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이게 혹시 사랑은 아닐지. 그러니까 마티아스가 추천서를 가지고 있음에도, 충분히 줄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막심에게 주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막심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서로 터놓고 말하지 않아도, 그게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아도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의 존재 자체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그 빈 공간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있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또 그 자리에 무엇이 있다 사라졌는지 어느 누군가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 청춘들은 그 공간의 존재감을 향유한다.


그리하여 공항으로 데려다 주려는 친구가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엔딩에서 막심 앞에 환하게 웃고 있는 마티아스가 실은 그 자리에 온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비록 마티아스가 막심을 붙잡으러 오지 않았어도 형언할 수 없는 그 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그 빈자리를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던 막심의 후련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상관없다. 그 자리엔 생각보다 오랜 우정이 있었다. 그 오랜 우정이 있던 자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남아서 빈자리가 빈자리가 아닌 것처럼 흔적을 남겨,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감정은 나에게 존재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그게 있던 빈자리를 알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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