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더블: 달콤한 악몽>

반복하는 시스템에 고립된 인간의 외로움을 통감하는 영화

by FREESIA
마치 내 몸이 투명인간처럼 나 자신에게서 영원히 벗어난 느낌이랄까.
출처: 영화 <더블: 달콤한 악몽>

어느 날 나와 똑같은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거울을 보고 있는 듯 닮았지만 숫기 없고 무기력한 사이먼과 달리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제임스. 처음에는 매력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정반대 성격의 소유자인 제임스를 한편으론 동경하고, 그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이 사이먼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 하지만 점점 사이먼의 모든 노력과 배경을 자기 것인 것 마냥 빼앗아 가려하는 제임스가 나의 삶 마저 지배하려 들어오기 시작할 때 사이먼은 과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늘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눈치나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일생일대의 변화를 택할 것인가.

출처: 영화 <더블: 달콤한 악몽>

여기에 사이먼이라는 한 남자가 있다. 용기도 없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주문도 못하는 성격에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 다가가는 것도 남들만큼 쉽지 않다. 게다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풀리는 법도 없어서 하는 행동마다 엉성하기 그지없을 정도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몰래 한나의 흔적을 뒤쫓거나 히치콕의 <이창>에서의 레퍼런스를 떠올리게 하는 망원경으로 건너편에 사는 그녀를 몰래 지켜보는 것뿐이다. 이때 모든 것이 완벽한 제임스라는 남자가 사이먼의 일상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사이먼은 그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주인공처럼 더 이상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제임스에게 맞서고자 한다.


우선 영화가 다루고 있는 배경이 매우 독특하다. 독재 통지 국가 혹은 막 산업화된 도시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곳에서 노동자들은 시끄러운 기계 소음 속에서 로봇처럼 일한다. 이를 테면, 사이먼이 아무리 오랫동안 직장에서 일 했다고 하더라도 신분증 오류에 대해 경비관은 인간적인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계에 의한 사무처리에 무조건적으로 의지하고 만다. 화려한 음영 효과나 빛을 이용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면들도 굉장히 많은데 특히나 이 사회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도록 연출된 것 같다. 칙칙하고 다소 먼지 낀 듯한 어두운 환경의 직장,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환한 불빛이 아닌 어둠 속 작은 불빛 하나에 의존해야만 하는 모습 속에서 고된 노동 환경과 고질적인 외로움이라는 두 가지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불빛뿐만 아니라 사이먼이 일하는 직장에서의 소음이 너무 크게 들려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인물적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사이먼은 평소 이리저리 주변을 신경 쓰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인 만큼 그의 혼란스럽고 집중되지 않는 느낌을 부각하고자 캐릭터를 외부적으로 설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어쩌면 국가에서는 기업의 성장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고, 광고에서는 '기업이 곧 사람'이라는 미학적 이상을 건네지만 사실은 그 안에 숨겨진, 사회의 잔혹한 이면성을 상징하는 게 바로 소음이 아닐까. 사람을 위한다는 세상에서 정작 사람의 목소리는 기계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사회에서는 외로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수도 높아서 자살 전문 수사팀이 꾸려졌을 정도니 말이다.

출처: 영화 <더블: 달콤한 악몽>

사이먼이 이토록 소극적이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상과 한 국가의 대령에 대한 충성심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이자 성과만을 중요시하는 이 세상에서 사이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특별한 것 하나 없이 모두 똑같은 일원일 뿐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나의 존재를 상실하고, 그 상실감으로 자살까지 선택하는 자들이 많은 게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 사이먼은 한나를 만나고 나서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그는 대령에게 '전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연신 변명을 해댄다.


하지만 남들처럼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내가 누군가로 인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란 감정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이 투명인간 같았던 사이먼의 일상을 특별하게 변화시켜주는 좋은 신호였다.

출처: 영화 <더블: 달콤한 악몽>

그런 사이먼이 어머니 묘지 앞에서 제임스를 공격하자 도리어 자기 자신에게 상처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점을 이용해 짜릿한 복수극을 펼친다. 존재감 하나 없던 '내'가 존재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파괴하는 것이다. 어쩌면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또는, 기업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사이먼보다는 재능 있는 제임스라는 인재가 더 필요하다고 그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이먼은 누구보다도 다른 이의 존재를 잘 헤아리던 사람이었다. 식당에서 원하는 주문 하나 못하는 것도 실은 식당과 점원의 상황을 배려했기에 그만큼 눈치를 보았던 그였다. 죽음의 끝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추운 발에 자신의 신발을 신겨주는 상냥한 마음씨가 그에겐 있었고, 무엇보다 한나의 마음속 외로움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사람이 바로 사이먼이었다. 세상이 바라는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 한 순간 스스로를 포기하려 맘먹기도 했었지만 그 순간 그의 맘을 붙잡았던 건 한나였다. 사랑의 설렘을 느끼던 순간,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그림자를 몰아내고 환한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춰졌듯 사이먼에게 사랑은 그를 살게 하는 존재이자 빛이었다.


그리하여 사이먼은 제임스를 죽이고 세상에 '나'라는 유일한 존재로 살아남는다. 세상이 규정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그 존재를 파괴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저도 제가 꽤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출처: 영화 <더블: 달콤한 악몽>

제임스와 만남 이후 이루어졌던 수많은 갈등. 이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존재를 묻는, 일생에서 중요한 과정이었다. 절대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나의 존재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사이먼은 말했다.

내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실은, 존재는 쟁취하는 것도 아니고 거듭나서 바꿔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그게 바로 나의 존재다.


평점: ★★★ 3.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바닷마을 다이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