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지만 나아간다
Hi?
어느 덧 9월이 끝나가네
“벌써” 라는 말을 꽤나 자주 하게되는 요즘이야. 날짜를 확인하고 간담이 서늘해지는 기분도 들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꼬박꼬박 흐르고 있으니 앞으로의 시간을 잘 살아야겠다 라는 마음도 들고.
처음 왔던 8월에는 정말 더웠거든. 물론 처음 와서는 아파서 더운 줄도 모르고 침대에서 보냈지만… 잠이 부족해서 몸 상태가 안 좋은 줄만 알았는데 내가 또 코로나 일 줄은 이 때는 몰랐지
아프니까 몸이 자극적인 음식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어서 야채랑 과일도 챙겨먹고, 좀 괜찮아진 다음부터는 체력회복을 위한 운동도 조금씩 했어. 이사할 때 마다 도착하면 1-2주는 호텔에서 머물거든? 생각해보면 내가 “떠날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는건 그 기간부터인 것 같아. 내가 머무는 곳의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니까. 나도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지.
살 곳을 정해도 짐이 오는 데 시간이 걸리면 또 붕뜬 마음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나의 물건이 채워지지 않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 있어. 내 눈에 보이는 ‘책임질 일’이 이토록 적으니까 그 가뿐한 마음이 음식 잘 챙겨먹는데도 도움을 주지.
너는 음식을 챙겨먹는 걸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너 자신을 다정하게 챙기는 태도로 여기는데, 나는 좀 … 너무 챙겨먹는 느낌.. ^^ 음식이 가끔은 너무 나를 좌지우지 하는 기분이 들 정도야. 나도 물론 냉장고에서 재료 꺼내서 일일이 챙겨먹는 게 귀찮을 때가 더 많지만 그렇게 챙겨먹고 나면 자기효능감이 강하게 들어. ‘아 이 한 끼도 라면같은 거 안 먹고 잘 챙겨 먹었다.’ 나를 잘 책임진 느낌이 들어서 좀 뿌듯해. 너도 이번에 건강하게 챙겨 먹으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그랬다면 좋겠다 ♥
환경이 바뀌고 그에 따른 나의 사정이 조금씩 변할 때 내가 해오던 루틴이 흔들리고 하기로 마음 먹은 것들이 잘 되지 않으면 그 때마다 리셋 버튼을 찾게 돼. 그냥 여지껏 했던 걸 모두 잊고 마치 처음부터 하는 마음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이 생겨. 흔들려서 완벽하지 않아진 내 루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니까 ‘무엇’을 하는지보다 ‘어떻게 완벽히’ 하는지에 집착한 마음.
이렇게 글로 써보니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ㅎㅎ ‘꾸준하게, 완벽하게’에 집착하지 않고, 그렇지만 호기심을 잃고 나태해지지 않는 그 ‘책임감’의 중심점을 찾고 있는 중인 거 같아. 생각해보면 나도 늘 미괄식으로 살아왔지만, 김혼비 작가와는 다르게 두괄식이 아닌 나를 ‘불완전한 사람’으로 인식하며, 그 불안감에 스스로를 지치게 하면서 살아온거 같아.
‘나는 뭐든 될 수 있어’와 ‘난 아무것도 안돼.’ 모 아니면 도. 내가 나를 딱 떨어지는 무언가로 규정할 수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거다 라는 생각.
스스로가 불완전하다고 느낄 수록 더욱 “확실한” 일만을 원하게 되지
내 눈에 당장 성과가 보이고, 당장 몸으로 변화가 느껴지는 것들. “확실함”은 작은 순간이 모여 겹겹이 쌓이는 건데 말야. 그래서 매일의 더딘 나아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있어.
“보통 내 안 어딘가에 ‘진정한 나다움’ 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나는 그 ‘나다움’을 발견하고 찾아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다움’의 상당 부분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 김혼비 《다정소감》
더디게 나아가는 나 자신을 견디고, 부족하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자꾸 부딪히는 일.
이번에 그래서 또 안하던 짓을 해봤는데
혼자 갑자기 주변 한인 식당 가서 사장님하고 얘기하기
한인 식당 가는 건 낯선 도시에 가면 통과 의례처럼 해내는 미션이었는데
혼자서, 사장님하고 말동무 하려고 가는 건 처음이었어!
내가 사는 이 소도시에서 30년 동안 살면서 25년 동안 이 가게를 운영해오셨다는 사장님. 동생분의 권유로 처음 일본으로 이민오게 된 이야기, 한국 문화의 인기 덕에 젊은층 손님이 많아진 이야기 등 평소의 소심한 나라면 묻지 못했을 많은 이야기를 듣고 왔어. 집으로 홀로 걸어가는 길에 이런 '안하던 짓'을 해본 내가 뿌듯하더라구. 나이를 먹을 수록 애써서 타인과 교류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고립시키기 쉽다고 생각해왔거든.
화면을 통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대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얼굴보고 나누는 긴 대화가 요새 드물잖아. 같은 동네에 오래 살아본 이민자로서, 그 분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의 스펙트럼을 조금은 더 넓혀주셨겠지.
안하던 짓 2
언어를 배우는 데엔 그 언어를 쓰는 친구만한게 없잖아? 그래서 언어교환 앱인 Tandem 을 깔고
영어와 한국어에 관심있는 일본인들하고 문자를 주고 받고 있거든? 근데 그 중 한 친구 우리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클라이밍 짐에서 일하지 뭐야!
그래서 만나고 왔어. 22살인 이 친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압벽타기 캠핑여행을 갈 정도로 클라이밍에 푹 빠져있어.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일하는 게 본업, 클라이밍 짐은 한 달에 4번만 일을 한대. 내년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서 캐나다로 떠날 예정이라 영어를 연습하기 위해 앱에서 나와 친구가 되었대. 대단하지 않아?
22살의 나는 이런 행동력이 없었던 거 같은데 벌써 해보고 부딪힌 일이 이렇게나 많다면 내 나이가 된 그 친구는 얼마나 큰 자산을 갖고 있을까? 관심이 있어도 못할 거 같아서 안해본 일이 나는 참 많은데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잘 해내야된다’ 라는 이상한 강박감도 컸고, 그랬더니 나이는 계속 먹는데 아쉬움만 커졌잖아? 해보고 싶은 일은 일단 해보는 어린 친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니까 ‘뭐든 해봐야겠다. 그냥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
시도조차 안해서 남은 아쉬움보다 해보고 실패해본 경험으로 나는 분명 성장할테니까. 또 그렇게 ‘더딘 나아감’에 대한 다짐을 이 친구를 보며 하게 되었어. 절대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루트도 결국 오르게 되듯이 작은 시도들이 모여 더디게 계속 나아가는 너와 나의 성장을 기원하며...!
도쿄에서,
- 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