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듀군 Jun 09. 2023

선택을 미워하지 마세요.

감사하세요.


일본 나카스강의 야경

퇴사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기쁠 줄로만 알았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퇴직서를 가슴에 품고 산다고 말하지 않는가. 나도 그러한 사람 중에 한 명이 되고 싶었고, 될 줄 알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 내 몸이 훨씬 가벼워질 줄 알았건만 찌뿌둥한 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선택에 대한 결과를 마주한다. 예상했던 결과와 일치되면 안도감은 있지만 예상했던 내용이라 결과가 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 안도감으로 더 큰 쾌락과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이다.

반대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하면 불안함은 커지지만 다음 발걸음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새로운 사고의 과정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가벼이 올라오는 이 느낌이 때론 현실을 더욱 흥미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나의 퇴사가 그러했다.


퇴사 후 구체적으로 할 것들에 대해 작성하고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당차게 다시 일어서리라 다짐했건만 참 내 마음은 애석하게 그 계획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거절이었다. 내 마음이 나를 거절하니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자기 방어 기질이 발동되었다.


"내가 힘들었으니 퇴사해도 됐지 뭐 /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어때? 힘든 걸 내려놓게 됐으니 그걸로 족한 거 아니야? / 그간 열심히 달렸으니 스스로에게 쉼을 부여해도 되지 않아?" 등 말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자 멈춰있던 사고의 세포는 다시 깨어나 나를 두드린다. 깨운다. 꼬집는다.


서서히 아파온다. 그러자 스스로에게 묻는다.


"책이라도 읽어보는 건 어때?"


나는 내 안의 자아가 던져준 생각에 동의하여 아무 생각도 없이 자연스레 책을 찾는다. 어떠한 과정도 없다.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플랫폼에 접속하여 그냥 가장 첫 화면에 표시된 책을 선택한다. 책 선정에는 5초도 소비되지 않았다. 나는 책을 클릭하여 프롤로그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그 책은 글쓰기 책도 아닌 자서전인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글쓰기를 강조한다. 글을 써보란다. 참 신기하다. 별생각 없이 선택했던 책에서 말하는 것은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글을 다시 또 써보라는 거 아닌가?


그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으나, 책의 내용을 통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고 있고, 움직이기에 지금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니 생각이 정리되고 온전히 내 시간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것만으로 크나큰 보상을 받았다. 내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면 다른 사물, 사람에게 절대 집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내게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으로 자유가 찾아온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 속에 날 뛴다. 날뛰는 것 속에서 찾아오는 희열과 따스함이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이 따스함과 희열에 몸을 맡긴다. 그러곤 글에게 말한다.


글아 고맙다.


'그래 고맙다'


글이 내게 감사를 표한다.


감사를 나눌 수 있는 햇살 같은 따뜻한 날에 또 한 번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스를 떨쳐내는 것이 스트레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