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너 할 수 있어.
부쩍 자존감이 낮아진다. 조여 오는 나이와 시간 속 없던 비교의식이 피워지기 시작한다.
잘 이겨내 왔으리라 생각한 자의식이 무너진다. 따가운 눈초리, 우울한 망상 등 끊임없는 공격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몸을 웅크린다. 몸을 웅크리자 눈이 가려진다. 볼 수 없으니 보지 않는 편이 낫겠다며 도피한다.
일시적으로 세상과 단절됨을 느낀다.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좀처럼 참여하기 힘들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답장조차 안 할 거라는 선입견이 찾아와 키보드를 두드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미리 보기로 메시지만 훑고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바보 같은 행동이다.
이대로 하루를 보내기 싫고 답답한 마음 풀 곳 없어 이곳에 적는다. 브런치가 일기가 되는 것만 같아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뭐라도 작성해 보며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올리는 것이 조금은 내 자아를 위해 나은 선택인 듯싶다. 익명의 플랫폼 속에서 가감 없이 솔직한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삭제한다. 어느 순간 비교와 부러움의 것들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웅크림의 시간이 지속되면 모든 것이 파멸될 것 같기에 선택한 행동이다. 인스타그램은 방대한 정보 시대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 반면 자극적인 것과 끊임없는 사건 사고들의 향연이다. 애써 보지 않아도 세상은 굴러간다. 스스로를 위협하는 행동이 있다면 제거한다. 옳은 선택일지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자.
무기력함이 지속될 즈음 글을 쓰며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신기하다. 솔직한 감정을 당당히 맞이하니 잠긴 눈이 조금은 떠지기 시작한다. 호흡은 할 수 있어졌다. 나는 이내 깨닫는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구나.
내 감정을 표현할 이조차 없을 때, 글이 내게 다가와 나의 벗이 돼주었다. 힘들지만 덕분에 고맙다. 때때로 내게 벗이 되어줄 수 있겠냐 묻자 글은 대가 없는 사랑을 약속한다. 덕분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웅크린 몸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반쯤 떠진 눈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바라본 세상에서 나지막이 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