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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군 Jul 03. 2023

횡단보도에서 내려오지 않는 팔

고마운 아이야. 우리 또 보자.

photo by pexels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햇빛이 몸을 쬐는 오후 5시. 나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로 한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하차한 나는,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고 있다. 집까지 4분여 가량 남은 시간이기에 노래 한 곡을 선정하여 멜로디와 가사를 음미한다. 


신호가 바뀐다. 신호등을 건너려던 찰나 왼쪽에 검은색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남자아이를 마주한다.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이어폰을 끼고 해와 같이 밝은 미소를 짓는다. 눈이 마주치려 하자 나는 재빨리 시선을 피한다. 우린 함께 횡단보도를 건넌다.


아이가 오른손을 번쩍 든다. 가냘프지만 단단한 팔이다. 곤고해 보이는 아이의 손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까지 내리지 않을 기세다. 10초가 지날 무렵 횡단보도를 다 건넌다. 아이를 보니 유년시절이 생각남과 동시에 대견한 마음이 자리한다. 오랜만에 동네에서 순수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를 봐서일까. 보지 않아도 부모님도 정말 훌륭하신 분이리라. 아이의 곤고한 팔이 웅크린 벽을 허물고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아이는 행복 전도사다.


횡단보도를 건넌 이후 인도로 향하는 중이다. 아이는 차가 오는지를 수차례 살핀다. 더욱이 놀란 것은 여전히 아이의 팔은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수천번을 오갔던 귀갓길 중 가끔 횡단보도에서 손을 들고 건너는 아이는 봤지만 이런 아이는 처음이다. 인도의 끝에 다다랐을 때서야 비로소 아이는 손을 내리며 기뻐한다.


사춘기가 올 시기인 중학생처럼 보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안전함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랑곳 않는 아이의 팔은 그 어떤 성인의 팔보다 강하고 멋지다. 아이는 곧 할아버지 같이 뒷짐을 지며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길을 걸어간다. 


이는 내가 바랬고 바라던 과거와 미래의 투영이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온 전체로부터 흘러나오는 순수함, 배움을 실천하는 능력, 행복 가득한 세 가지 기운은 두 세 걸음 떨어진 내게도 가닿는다. 전이다.


전이와 동시에 다짐한다. 돌아가는 남은 시간이라도 아이의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영혼만은 아이가 되어보고 싶은 아집을 담으며 호기롭게.


괜스레 아이의 비슷한 감정을 답습하고자 저 먼치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니. 근데. 진짜로. 너만 모르나 봐. 온 세상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걸~'
- Lucy '아니 근데 진짜 中' -

눈을 들어 주변을 바라보니, 예기치 못한 행복이 이따금 찾아온다. 아이는 배움이라는 선물까지 남겨준다.

아이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을 담아 이곳에 남긴다.


'너희는 우리의 부족했던 과거를 쓰다듬어준단다. 동시에 미래를 당차게 내딛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귀한 존재란다.'


'행복전도사. 널 잊지 않을게. 우리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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