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듀군 Jul 04. 2023

500원짜리 마을 구경비

찜질방에서 찾은 마을

photo by unsplash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발견


찜질방에서 마주한 다양한 사람과 표정을 관찰한다. 왁자지껄한 목소리를 모아 담으니 하나의 마을이 형성된다. 열기는 식는 법을 잊은 채 뜨겁게 타오름을 반복한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피로를 풀기 위해 찜질방을 찾게 된다. 체온이 올라가며 혈액 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쌓인 피로 해소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노폐물이 땀을 통해 배출되며 산성화 된 체질을 알칼리성으로 바꿔주는 효능도 있다고 한다. 찜질방에서 흘리는 훌륭한 땀들은 삶의 짐이 되어 떨어져 나간다. 오로지 한 가지의 목적이다.


늦은 오후 시간이 되자 찜질방에 사람이 붐비기 시작한다.


크게 네 부류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남녀 무리들, 커플들, 아이와 어머니, 중후한 어머님들.


내 삶의 짐을 어느 정도 덜었다고 생각하자 시선을 자연스레 네 부류로 확장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들은 무얼 위해 이곳에 방문했을까? 오로지 나와 같이 땀을 배출하고 피로를 개선하려는 이들일까?


휴대폰을 보던 시간을 돌려 그들의 표정과 대화를 관찰한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남녀 무리들은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이들이다. 별거 아닌 대화에도 까르르 웃으며 그들의 구역을 생성한다. 더욱이 서로의 연애 이야기, 이성문제 등의 주제가 확장되면 허리는 점점 더 가운데로 쏠린 채 관심과 웃음의 크기는 커져만 간다. 웃음구역이다. 그들이 내뿜는 웃음 에너지는 찜질방 전체를 감싸기에 충분하다.


커플들은 독특하다. 같은 성향의 커플도 있겠지만, 대게 한 명이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온도를 버티다 못해 먼저 한증막을 이탈한다. 남은이는 묵묵히 홀로 땀을 빼며 자신의 시간에 집중한다. 둘이 와서 하나가 되는 매직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왜 이제 왔냐며 농담 섞인 말을 건넨다. 하지만, 커플은 커플이다. 이내 곧 서로의 땀을 닦아주며 화기애애한 채 이곳저곳 사랑구역을 흩뿌린다.


아이와 어머니는 오묘하다. 유년시절 내가 찜질방에 방문했을 땐 예쁘장한 아이들에게만 시선이 머물렀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되려 어머니의 시선으로 집중한다. 그렇기에 오묘하다. 그들의 노고를 조금은 알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전부 다 이해한다면 위선이다. 어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자기 주변을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웃음과 힘듦 그 어딘가의 중간 표정을 짓고 계신 듯하다. 삶의 힘듦이 엿보이며 곧 머지않은 나의 책임으로도 다가온다. 깨달음을 주는 배움 구역이다.


중후한 어머님들은 핑퐁과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수십 가지의 주제에도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자식자랑, 마사지, 부업, 힘든 일, 슬픈 일, 주변 사람 이야기 등 보따리꾼들이다. 수십 권의 책들이 모여있는 도서관과도 비슷하다. 다양한 분야의 한 페이지 책들이 나열된 공간에 섞이는 느낌이다. 무얼 취하고 무얼 덜어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방대한 양이기에 혼란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기쁜 일, 화나는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희로애락'을 전부 지녔다. 말 그대로 인생구역이다.


저먼 치서 네 부류의 구도를 다시 눈에 담는다. 마치 하나의 마을이 보인다. 겉만 다를 뿐 이곳은 마을임에 틀림없다. 정겨운 마을을 눈에 담으며 또 한 번 생각한다.


찜질방은 피로해소를 위한 곳이 맞다. 다만, 육체적 피로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본질은 정신적 피로의 회복이자 동시에 웃음, 사랑, 배움을 포함한 인생이 뭉쳐진 아름다운 곳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따뜻함이 가득한 이곳에 조금 더 머무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시간이 지나자 문득 불안함이 엄습해 온다.


아뿔싸, 무료 주차 5시간이 지났으려나?


재빨리 씻고 정리하여 주차정산기로 향한다.


제길. 5시간 2분이다. 무료주차 5시간을 고작 2분 초과했다. 2분인데 500원을 결제한다. 아깝다. 500원이 내게 정신을 차리며 다시 현실로 돌아옴을 알린다.


나는 대답한다.


아무렴 어떤가! 마을에 조금 더 머무른 값이라 치자!

매거진의 이전글 횡단보도에서 내려오지 않는 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