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_서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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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뒤 그는 꽤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만년 성 대리로 머물러 있던 공환 씨가 팀장으로 승급하고 난 뒤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있었던 큰 세미나 때였다. 타 조명 회사들도 오는 세미나 같은 자리였는데 긴장한 탓인지 발표 내내 공환의 직급을 대리라고 불러버린 것이다.
공환 대리, 아니 팀장은 마음이 그다지 너그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잔뜩 취한 공환은 도람을 불러 족히 삼십 분은 넘게 -본인 딴에는 애정 어린- 훈계를 퍼부었다. 사실 도람의 입장에서는 폭언에 가까운 종류였다.
“도람 씨, 대체 왜 그래? 지난번부터? 응? 정신이 제대로 안 박혔어? 도람 씨, 아니다, 너 나보다 나이도 어리지? 말 놓을게. 야, 솔직히 말해봐. 너 내가 만만해서 그러지. 그렇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어. 야, 그래도 나니까 이런 거 다 짚어주는 거야. 너 어디 가서 실수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감사해하라고. 알았어? 표정이 왜 이리 안 좋아.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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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도람은 안 그래도 지쳐가던 회사생활이 조금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분명 더 빛나고 싶어 택한 세상이었는데 그의 불씨는 점점 시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도람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상황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이번 프로젝트 발제는 도람 씨가 전부 맡아서 해 봐. 지난 발표 때도 몇 가지 호칭 문제만 빼면 꽤 잘 해냈으니.”
그러니까 다음 분기의 프로젝트의 자료 조사부터 발표까지 모든 과정을 도람이 전담으로 맡게 된 것이다. 당장 다다음 주까지 자료를 마무리 지어 올려야 했다. 그동안은 동료나 선배들이 발제의 자료는 취합해서 주곤 했어서 모든 걸 혼자 맡게 된 그는 마음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녔다.
게다가 한창 이사 시즌이라 조명 매출이 급증해 팀 내 분위기도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잘 챙겨주던 보라도 자신의 일이 바쁘자 도람의 부탁이나 질문은 미뤄놓기 일쑤였다.
“선생님! 혹시 이 부분은 어떻게 하나요?”
“잠시만요, 도람 씨.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성 팀장님, 저 여쭤볼 게 있어서요….”
“나 지금 일하는 거 안 보여?”
“저 내일까지 마감인데 제 질문 좀….”
“이제 알아서 할 때도 됐잖아요!”
“하, 하지만 오늘이 마감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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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업무가 밤까지 이어진 도람은 몸도 마음도 너무나 피곤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정신 차릴 겸 잠시 바람을 쐬러 회사 베란다로 나간 도람은 반짝이는 야경을 등지고는 생각했다.
‘다들 알려주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서 하는 거지. 나는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에도 달라진 것 없이 똑같네. 어쩜 이렇게 서투른지.’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는 몸을 돌리고서 자신을 늘 설레게 했던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근본부터 후회했다.
‘사실 애초에 사람이 되려는 것도 욕심이었는지도 몰라. 나는 결국 도깨비인데. 평생 흉내만 내겠지. 날 감추면서….’
하지만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할 일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찬바람을 쐬는 것도 잠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서 마저 잔업을 하다 보니 반짝이던 하늘의 별도 다시 제 모습을 감추는 즈음의 시간이 되었다. 날이 쌀쌀했다. 얇게 입고 온 도람은 입사 첫날 서랍에서 보았던 목도리를 기억해냈다. 무질서하게 쌓인 물건들 속에 약간 해진 목도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일 년 동안 아무도 안 찾았으니 주인은 없겠지. 이거라도 두르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