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구병모,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햇살 좋은 연남동 책방에 갔다가 홀린 듯이 구병모의 소설책을 샀다. 예전부터 구병모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나온 그녀의 신작 표지가 너무 예쁜지라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덥석 그냥 사버렸다. 아주 우연히 만난 그 소설에서 나는 또 아주 의외의 내용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타투'에 관한 이야기였다. 요즘 타투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누가 들었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구성이 매우 독특했다. 복합/입체적 구성의 형식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런 단어들로는 이 소설의 구성이 설명되지 않을 것 같아 '샌드위치 구성'이라고 직접 이름을 붙여보았다. 중년 여성 '시미'의 이야기가 긴 감자샐러드처럼 이어져있다고 치면 그 중간중간에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식빵처럼 껴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 이 소설 대체 장르가 뭐야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감자샐러드인줄 알았는데 식빵이 껴져 있는 거 보면 빵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시미'라는 중년 여성의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중간중간 살인사건 나오는 거 보면 추리소설인가 싶기도 하다는 말이다. 근데 소설은 감자샐러드에 빵을 끼운 샌드위치였다. 그러니까 드라마와 추리가 섞인 (타투에 관한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었다.
소설에는 쭈욱 결핍이나 아픔을 지닌 존재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학대를 받은 화인, 갑질 사장의 횡포에 시달리는 직원, 집착하는 남자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여자, 그리고 아들의 부재로 아파하는 시미. 그들은 (시미를 제외하고) 모두 자신들의 아픔을 덮기라도 하려는 듯 살갗에 타투를 새겼는데 놀랍게도 가장 위급한 순간에 처했을 때마다 다름 아닌 그 타투들이 살아나 그들을 도와준다. 이는 단순히 판타지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이 사실은 각 인물들이 아픔 속에서 얻은 힘을 비유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타투의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과 각 인물들이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교해보았을 때, (위급상황마다 살아나던) 타투의 힘=아픔을 딛고 성장한 힘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지켜준 것이 다름 아닌 타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미는 그동안 망설이던 타투를 하러 간다. 여기서 타투이스트는 시미에게 타투란 단순히 살갗에 무언가를 새기는 것의 의미를 초월해 심장에 수를 놓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미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자신을 아프게 하던 아들을 마음에 새기듯이 손목에 별 모양의 타투를 새긴다. 손목에 새겨진 별은 날아올라 밤하늘을 밝게 수놓으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시미의 변화까지 놓고 보자면 이 소설은 단순한 판타지소설로 정의하긴 어렵겠다. 환상적인 기법을 매력적으로 활용한 시미의 ‘판타지 성장소설’ 정도가 될 수 있겠다.
내 살갗에 수를 놓는다면,
가족들의 띠별 동물, 주황색 장미, 바다거북, 안경, 낮달, 백합, 흰색 깃털, 깃펜, 우리집 고양이 등등...
아마 피부가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 핸드폰 용량처럼...
어쨌거나 역시 하고 싶은 도안을 생각해보니 거의 대부분 사람과 관련된 것이었다. 소중한 혹은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흔적들을 몸에 새기고 싶은 마음인가 보다. 아니 사실은 보이지 않지만 이미 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문양들을 새기고 싶게 한 이들과의 흔적이 내 피부 이곳저곳에 다닥다닥 붙어 결국 나를 이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 문양을 떠올리게 한 사람들이 화인의 샐러맨더처럼 날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