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강아지 한 마리 데려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여고 2학년이던 나는 야자도 빼먹고 달려와 강아지부터 찾았다. 주방 싱크대 밑에 들어가 꼼짝하지 않는다는 강아지를 보려고 배를 깔고 누웠다. 깊숙한 곳에서 웅크린 채 떨고 있는 강아지를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왜 해골처럼 생겼냐고 했더니 치와와라고 했다. 복슬복슬 털 많은 강아지를 기대했던 나는 실망이 컸다. 시간이 지나자 강아지는 목이 말랐는지 꼬리를 붙인 채 슬금슬금 나왔다. 가까이서 보니 꼭 못생긴 E.T 같았다. 아버지는 커가면서 살도 찌고 주름도 없어져 이뻐질 거라고 하셨다. 미니라고 이름 지었다.
미니는 커가면서 정말 이뻐지기 시작했다. 하는 짓도 얼마나 이쁜지 오자마자 대소변을 가리고 밥도 잘 먹었다. 낯선 사람에게는 무섭도록 앙칼지지만, 가족에게는 온갖 애교를 부리며 파고들었다. 티브이 볼 땐 무릎에 앉히고, 잘 땐 이불속에서 같이 잤다. 털이 많이 빠져도 서로 안겠다고, 서로 데리고 자겠다고, 형제들끼리 다투는 날이 많았다. 미니는 막냇동생이나 다름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언니들과 남동생이 결혼해서 집을 떠났다. 미니는 맞벌이하는 부모님보다 나를 가장 잘 따랐다. 우리 집에 온 지 17년, 미니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갔다. 얼굴은 앳되고 몸은 작아서, 사람들은 새끼 강아지인 줄 아는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이빨이 빠지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먹지 못했고, 기운이 없었고 잘 걷지 못했다. 관절이 약해져서 움직이질 못하니 비만이 됐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엔 그때의 미니가 가장 예뻤다. 귀는 처지고 얼굴은 순해지고 퉁퉁 해진 엉덩이로 뒤뚱거리던, 정말이지 한 번 안으면 놓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미니가 발작을 했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눈이 돌아가고 혀가 밀려 나온 채로. 병원에 다녀왔지만, 노환 증세라 혀만 말리지 않게 봐주면 금방 돌아올 거라 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밖에 없었다. 발작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고 주기는 짧아졌다. 5분이면 돌아왔지만,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길고 두려운 시간이었다. 직장에서도 혼자 있는 미니가 걱정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주말에도 급한 약속 아니면 나가지 않았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미니를 안타까워하셨다.
내 결혼 날짜가 잡혔다. 예식 준비로 몸과 마음이 분주했다. 결혼하면 미니는 내가 데리고 갈 거라고 했다. 부모님은 반대하시고 예비 신랑도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나는 완강했다. 도저히 아픈 미니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날이 쇠약해지는 미니 때문에 결혼 준비에 집중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예식 일주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신혼여행 동안 ‘미니를 어쩌지’ 걱정하며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날따라 미니의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걱정했던 마음을 위로하는 듯, 다른 날보다 밥도 많이 먹고 편하게 잠든 미니를 보고서야 2층 내방으로 올라갔다. 늦은 밤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났다가 문득 미니가 궁금해서 안방 문을 조용히 열었다. 엄마 머리맡에 있던 미니가 고개 들어 눈을 맞췄다. 유독 반짝이던 눈,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걸까.그때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 줄걸. 마음을 다해 한 번 더 안아 줄걸. 유난히 피곤했던 나는 ‘잘 자, 미니야.’ 모른 척 돌아섰다.
새벽, 미니가 천국에 갔다. 엄마 머리맡, 그 자리에서 너무도 조용하게. 가족들이 슬퍼할까 봐, 아무도 모르게 갔다. 결혼해서 맘 편히 살라고 그렇게 서둘러 떠났다.
미니와의 마지막 눈 맞춤은 내게 쓸쓸하고 아픈 기억이다. 만약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미니를 안고 마지막 체온까지 지켜주고 싶다. 힘들고 무서웠을 고통의 시간을 결코 혼자 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