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유년이여. 2
내 첫 경험은 열세 살.
내 첫 경험은 열세 살이다.
첫 경험이란 단어가 조금 거시기하지만 내 첫 아르바이트 경험이 열세 살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그땐 국민학교 ㅎㅎ) 겨울 방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 2였던 친언니와 아르바이트하기로 했다. 언니가 하자고 했는지 내가 하겠다고 졸랐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 장사하러 가셨기 때문에 차려 놓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때우고 언니와 나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일터로 갔다. 엄마 아빠께는 비밀이었다.
네 자매 중 막내였던 나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체구가 고만고만한 언니들의 키와 덩치, 심지어 얼굴까지 이미 앞지르고 있었다. 내 나이를 말했는지 그 또한 기억에 없지만 성숙한 얼굴 덕에 나는 무사히 채용됐다.
커다란 양옥집 2층에 마련된 가내 봉제 공장이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한지 널찍한 거실과 방에는 일하는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곳곳에 곰 인형이 담긴 큰 비닐봉지가 있었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인형 눈알박기였다.
구멍 뚫린 작은 봉에 인형 머리를 끼우고 정확한 위치에 눈알 단추를 꽂아 고무망치로 내려치면 쏙 하고 박힌다. 약하게 내려치면 잘 박히지 않고 너무 세게 내려치면 으스러진다. 한 알에 5원, 양쪽 눈을 완성한 인형 한 개가 10원이었다.
손이 부르트도록 일해도 하루 벌이는 2천 원을 넘지 않았다. 언니는 나보다 손이 야무져서인지 그나마 조금 나았다. 일해주기로 한 5일이 지나고 내가 받은 돈은 6,800원이었다. 생각보다 적은 돈이라 실망했지만 내 손으로 힘들게 번 돈이라 그런지 눈물 나게 감격스러웠다.
정산받은 노란 봉투를 들고 언니와 나는 근처 재래시장엘 갔다. 이틀후면 엄마 생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언니와 나는 돈을 합쳐 소고기 한 근과 (미역국에 넣을) 닭 2마리(닭 볶음탕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남은 돈으로 엄마가 신을 양말 두 켤레 샀다.(화장품을 사드리고 싶었는데 돈이 한참 모자랐다.)
처음 번 돈을 엄마 생신 선물로? 다 써버렸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풍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