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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유 Feb 08. 2023

그 순간에도 엄마는. 1

엄마의 낡은 가방

엄마가 며칠 전부터 계속 머리 아프다고 하셨다. 남동생의 결혼 준비로 신경 쓸게 많아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이미 세 명의 딸을 결혼시켰는데 1남 4녀, 애지중지 키운 막내아들 장가보내려니 생각보다 준비할 것도 비용도 많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일하는 게 좋았던 나는 동생이라도 먼저 결혼해 빨리 독립해 주길 바랐다.


두통이 점점 심해진다는 엄마께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라도 받아보시라고 했다. CT 결과 이상 없다는 소견이었다. 가족 모두 결혼 준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과로라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친구와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한잔하다 보니 귀가가 늦어졌다.

현관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서는데 안방에서 엄마와 남동생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신혼집 구하는 문제로 의견 마찰이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머리가 아프니 그만 얘기하자고 하는데도 동생은 집요하게 뭔가를 요구하듯 보였다. 남동생에게 준비해 놓은 결혼자금이 대체 얼마냐고 따져 묻자 짜증 난 듯 나가버렸다. 요즘 신경 쓸게 많은데 너까지 이렇게 밤늦게 다니냐는 엄마의 핀잔이 따라왔다.


두통이 다시 밀려오는지 엄마는 양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미간을 찡그렸다. 누워있는 엄마의 머리맡으로 가서 머리를 지압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안마받는 걸 좋아했다. 쉬는 날이면 엄마의 고단함을 마사지로 곧잘 풀어드리곤 했다.  


“머리를 꼭 칼로 쑤시는 것 같아. 약 먹어도 안 낫는다.”

“병원 검사 결과 정확한 거야? 차라리 내일 ㅇㅇ 병원으로 가봐. 거긴 대기 많으니까 심하면 응급실로 바로 가. 못 참아서 왔다고.”


둘째 언니에게 전화했다. 서울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대형 병원에 엄마 혼자 검사받게 하는 게 내심 걸리기도 하고 엄마 혈색이 정말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동생과 나는 출근이었고 아빠는 가게에 나가셔야 해서 언니보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일하는 중에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응급실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이었다.

뇌출혈이라고 했다. 응급 수술 들어가야 하니 당장 오라는 말과 함께.




부모님은 오랫동안 자영업을 하셨는데 마트를 하신 지는 20년이 돼가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다. 아버지의 한량 기질과 손익을 따지지 않는 상품 매입은 언제든 무슨 장사든 망하기 십상이었다. 부지런하고 야무진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당연스럽게 청과 매입 담당이 됐다. 생활력이 강한 엄마 덕분에 마트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연중무휴 영업 방침을 고수했던 부모님은 믿고 찾아오는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믿고 계셨다.


응급실 가는 날도 엄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구리 청과물 도매시장으로 향하셨다. 도매 시장은 현금거래로 이루어지는데 엄마는 일부러 낡고 허름한 가방을 메고 가셨다. 누가 봐도 돈이 없어 보이는 그런 가방. 청과 구매할 현금과 은행에 입금할 전 날 현금 매출, 비상금까지 꽤 많은 돈을 가방에 넣고 엄마는 혹여 잃어버릴세라 사선으로 메고 한 손으론 끈을 꼭 쥐었다.


그렇게 통증을 버티며 과일을 사고 배송을 시킨 후 엄마는 응급실로 향하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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