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구매가 끝나면 엄마는 가게로 가서 오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병원에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망치로 맞는 듯한 극심한 통증에 아버지께 전화하고 바로 응급실로 가셨다고 한다. 언니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응급실은 대기 환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접수하고 의자에 앉아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응급실에 도착한 언니가 엄마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엄마를 찾아 헤매던 언니는 응급실 밖, 복도 끝 의자에 모로 누워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 여기 누워 있었어? 한참 찾았네. 그렇게 많이 아파?”
언니 목소리에 엄마가 힘없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엄마 죽으려나 보다. 머리가... 으으... 아! 이 가아--방 좀 네가 자아ㄹ...”
언니를 보자 꽉 움켜쥐고 있던 엄마의 낡은 가방을 안심하듯 손에서 놓았다. 엄마의 말이 어눌하다 느낀 순간 엄마 눈이 제멋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푹 쓰러졌다. 언니가 울면서 소리쳤다. 엄마가 쓰러졌다고. 제발 좀 도와달라고.
지주막하 출혈, 엄마가 뇌출혈이란다. 출혈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너무 미세하여 일주일 전에 한 CT 검사에서는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저혈압이어서 다행히 확 터지지 않았지만 만일 외부에서 쓰러졌다면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응급조치를 바로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천운이라고.
수술 도중 사망확률 50퍼센트, 눈이 돌아간 상태인 걸로 봐서 시신경 후유증 50퍼센트. 수술 시간 6~7시간. 재출혈, 재수술 가능성 있음.
무지막지한 말을 늘어놓으며 의사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꺼억꺼억 울며 남동생이 사인하는데 손을 덜덜 떨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가족 모두 참담한 기분이었다.
나는 기도했다. 제발 살려만 달라고 이제껏 고생한 우리 엄마, 이렇게 가시면 안 된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울면서 빌고 또 빌었다.
수술이 끝난 엄마는 보름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일반 병실에 계시는 동안 내가 한 달 휴가를 내고 간병하기로 했다. 엄마는 잠에 무슨 한이 맺혔는지 이상하리만치 잠만 주무셨다.
“왜 이리 잠이 쏟아진다니. 먹는 것도 싫고 잠만 자고 싶네.”
엄마는 평생 못 잔 잠을 자듯 내내 단잠에 빠지셨다. 조금씩 활동해야 한다고 주치의한테 혼이 났지만 얼마나 잠이 고팠으면 저렇게 긴 잠을 주무실까 싶어 나는 모질게 깨울 수 없었다. 질릴 만큼 주무시고 난 뒤에야 엄마는 스스로 완벽하게 잠에서 깨어나셨다. 엄마는 눈에 띄게 회복하고 아무런 후유증 없이 무사히 퇴원했다.
벌써 17년 전의 일이다.
그때 그 순간, 언니 만나기 전까지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낡은 가방을 끌어안고 버텨 준 엄마의 정신력이 놀랍고 감사하다. (실제 엄마는 ‘나 쓰러져서 누가 이 가방 가져가면 어쩌지?’ 걱정하며 언니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주기적으로 정밀검사를 받고 덤으로 고혈압과 당뇨까지 얻으셨지만, 엄마는 동생의 결혼은 물론, 안 하겠다고 속 썩이던 나까지 결혼시키셨다. 예쁜 모습 모여드릴 수 있어서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