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간병 일지- 아빠와의 가장 긴 여행 1.
입원 전날 부모님과 고기라도 구워 먹으려고 미리 친정에 갔다. 식사를 통 못 하셨는지 아빠는 더욱 야위어 있었다. 잘게 썬 고기를 한 입만 드셔보라고 해도 도저히 못 먹겠다며 국에 말아 간신히 몇 수저 드시고는 통증 때문에 누워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자정이 넘은 시각, 거실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이런저런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는 소리에 잠이 깨셨는지 안방에서 엄마가 나오셨다. 그러고는 아빠가 걱정되는지 아빠 방문을 열었다. 두 분이 잠시 대화하는가 싶더니 아빠의 고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급히 방으로 갔다. 아빠는 허공에 대고 알 수 없는 말로 소리쳤고 엄마는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주무시라고 했다. 엄마가 방문을 닫고 나온 후에야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엄마, 아빠 누구한테 그러는 거야?"
"작년에 죽은 영희 고모가 자꾸 나타나서 같이 가자고 손목을 잡는단다. 헛것도 보인다고 그러고."
"진짜? 자주 그래?"
"낮에는 괜찮은데 밤에 자다 깨면 그러시네."
"말하지 그랬어. 걱정이다."
"치료하면 좋아지시겠지. 내일부터 네가 고생할 텐데 일찍 자."
누웠지만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엄마는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아빤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울까. 아빠 증상에 대해 검색하느라 꼬박 날이 샜다.
이른 아침부터 아빠 병원 갈 채비를 도왔다.
아빠는 원래 동네서도 알아주는 멋쟁이셨다. 또 워낙 바지런하고 깔끔한 성격이라 아빠 방 2단 헹거에는 티셔츠, 남방, 바지들이 계절별, 색깔별, 종류별로 옷걸이에 줄 맞춰 걸려 있다. 안경과 선글라스도 나란히, 빗도 나란히, 약도 나란히 있다.
아빠는 가지런한 옷걸이에서 단정한 남색 티셔츠와 베이지 체크 바지를 골랐다. 살이 얼마나 빠졌는지 복수가 가득 찬 배로도 바지가 커서 허리띠를 끝까지 쪼여야 했다. 기운이 없어 내 부축을 받으면서도 아빠는 선크림을 바르고 머리를 곱게 빗었다. 연보라색이 옅게 들어간 금테 안경과 가장 좋은 시계를 찼다. 시계 역시 손목에서 빙빙 돌았지만 빼지 않으셨다. 입원하는 사람이 멋 부린다며 엄마는 잔소리했지만 나는 좋았다. 아빠에게 꾸밀 힘이 남아 있어서. 그게 살고 싶은 의지 같아서.
손톱깎이, 족집게, 귀이개 등이 담겨있는 아빠 전용 미용 도구 통을 냉큼 입원 짐 속에 넣었다.
간병하는 동안 외할머니와 생활해야 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웠는데 할아버지 꼭 나아서 오시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기특했다. 아빠를 모시고 남편과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남편은 직장 때문에 집으로 갔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은 혼자 지내야 했다. 자기는 괜찮으니 아빠 간병에만 신경 쓰라고 말해주는 남편이 참 고맙고 많이 미안했다.
입원 첫날부터 아빠는 지겹도록 검사했다. 호흡기 내시경을 통해 림프샘 조직 및 세포 검사를 하고 전신 pet 촬영으로 전이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아빠의 최종 진단은 림프종(혈액암) 4기였다. (아형 -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폐(종격동) 림프절에서 시작한 암은 목, 복부, 허벅지, 다리 등 다발성으로 발견되었고 복막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특히 비대해진 암덩이가 폐와 복부 장기를 누르고 있어 호흡이 힘들고 배 통증이 심했을 거라고 했다.
아빠가 그렇게 아파하셨던 이유를 알고 나니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졌다.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절망하며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강해져야 했다. 아빠 옆에서 나는 가장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치료법은 항암밖에 없다고 했다.
여든셋 고령에 체력이 바닥인 몸 상태로 아빠가 버티실 수 있을지 걱정인데 우선 수액 영양제로 체력 좀 올리고 진행하면 안 되냐고 말씀드리니
"진행이 빨라 당장 항암을 안 하면 수주 또는 두 달 안에 사망하실 수 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든 아빠를 살려야 했다. 아빠가 없는 세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여정을 알 수 없는 여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