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ist in Atelier Jul 06. 2023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 John Martin

재난(Catastrophe)은 항상 곁에 머문다_9

마틴(John Martin, 1789~1854)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Pompei and Herculaneum>(1822)



서기 79년 8월 24일 오후 1시, 로마인들의 별장이었던 폼페이(Pompeii)와 헤라쿨라네움(Herculaneum)베수비오 화산(Monte Vesuvio)의 강력한 폭발로 화산재와 화산석으로 순식간에 뒤덮였다. 당시의 폭발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준하는 강도였다고 한다.  

폼페이는 화산재와 용암이 3~4m 높이로 도시를 뒤덮었으며, 헤라쿨라네움은 400도가 넘는 화쇄암 구름에 의해 약 2000여 명의 주민과 나무 등의 생명체가 모두 불타 20m가 넘는 진흙에 덮여 화석화되었다.

1592년 운하건설과정에서 우연히 감춰졌던 폼페이의 건물과 회화작품들이 발견되었으나 1748년 프랑스 브루봉 왕조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목욕탕, 원형극장, 약국 등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발굴된 유적들은 프랑스로 옮겨졌다. 이후 1861년 이탈리아의 통일 후 주세페 피오렐리에 의해 본격적으로 발굴되고 복원되기 시작했다.  


Photo from National Geographic, Pompeii Cast, 1894



영국의 화가, 조각가, 삽화가로 활동한 마틴은 재난적 상황과 세기말적 상황에 관심을 가진 화가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Pompei and Herculaneum>(1822)를 그렸는데, 이 그림은 윌리엄 터너(J.M.W. Turner, 1775~1851)의 <베수비오화산 폭발, Vesuvius in Eruption>(1817~20)과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1669)의 <벨사살 왕의 연회(Belshazzaris Feast)>(1636~1638)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Vesuvius in Eruption, J.M.W. Turner, Oil on Canvas,

빛의 대가라 불리는 윌리엄 터너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는데 뚜렷한 윤곽을 주변과 뒤섞어 빛의 산란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베수비오화산 폭발>에서 그는 대담하게 베수비오 화산을 정중앙에 배치하여 화산폭발의 순간을 빛으로 잡아내었고, 바닷물에 반사된 빛이 해안가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재앙의 순간을 모두가 모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Belshazzaris Feast, 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36-38, National Gallery, London

렘브란트는 <벨사살 왕의 연회>에서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작품은 예루살렘을 약탈한 바빌로니아의 왕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의 아들 벨사살의 연회를 그렸는데, 벨사살은 그의 아버지가 예루살렘에서 훔친 황금잔을 하나님을 위한 연회에 사용하였다. 렘브란트 특유의 표현방법인 명암의 대비를 잘 드러내는 화면은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극화하는데,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은 "메테, 메네, 테켈, 업하르신"이라고 쓰인 글을 가리키고 있다. 이 글귀는 "하나님은 당신의 왕국의 날들을 세어 그것을 끝냈다"라는 글로 번역된다고 한다. 이것은 예루살렘에서의 약탈로 이룬 그의 부도덕한 왕국을 메디아와 페르시아에 줘 심판하겠다는 신의 뜻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표현된 인물들의 구도와 동세 등의 특징을 존 마틴은 아래의 그림 하단 중앙 부분에 차용하였다.


The Destruction of Pompei and Herculaneum, Jhon Martin, Oil on Canvas, 161.6x253cm, Tate Britain

그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는 리처드 그랜빌(Richard Grenville, 1776~1839)의 의뢰로 시작되었다. 화산 폭발로 폐허가 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리움의 건너편에 있는 스타비아(Stabiae)에서 조망하듯 그려진 이 작품의 전경에는 가까스로 재앙을 피한 사람들, 죽어가며 울부짖는 시민들의 고통이 중첩되어 있고, 그 뒤에 보이는 나폴리만에는 여러 척의 배들이 간신히 재앙을 피해 급박하게 들어오고 있다. 원경에는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붉은빛의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붉게 물든 신전과 원형극장, 주거시설들이 폐허가 될 폼페이의 앞날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며, 하늘을 뒤덮은 붉은 화산재는 낙뢰와 함께 화면을 가득 메워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강하게 만든다. 타원형의 구도는 시선을 집중시키며 동시에 공간을 비워 화면의 극적 효과를 더한다.

이 작품은 1867년 내셔널 갤러리가 구입해 테이트 갤러리로 옮겼는데, 1928년 템즈강의 대홍수로 인해 갤러리 지하에서 심하게 파손되어 방치되었으나 1973년 재발견되어 2011년에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다.



폼페이의 비극은 사건의 화제성으로 인해 화가들의 작품소재로 흔히 사용되었다. <폼페이 최후의 날, The Last Day of Pompeii>(1803~1833)도 그중 하나인데, 이 작품은 러시아 낭만주의 화가 칼 브륄로프(Karl Pavlovich Bryullov, 1799~1852)의 손끝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1823년 로마 여행을 했는데, 그와 동행한 형제 알렉산드르는 1748년에 프랑스의 브루봉 왕조에 의해 시작되었던 폼페이의 연구와 복원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브륄로프의 알렉산드르와의 교류, 그리고 그가 1827년 폼페이를 방문하였던 사실은 어느 정도의 고증을 거쳐 이 작품을 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The Last Day of Pompeii, Karl Pavlovich Bryullov, 426.5x651cm, Oil on Canvas, 1830~1833

그는 화면의 오른쪽 위에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화염을 내뿜고 화산석들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붉게 물든 후경에는 건물들이 무너지며 불타고 있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놀란 소는 울부짖고,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사람들은 죽음에 직면해 있으며, 피해야 할 곳을 몰라 당황한 사람들과 아이는 거리를 헤매고 있다. 붉은색이 지배하고 있는 원경과는 다르게 비극적 인물 군상들의 표정은 정면에 위치한다. 오른쪽 윗편에 무너지고 있는 조각상들과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백마는 놀라 펄쩍 뛰고 사람은 균형을 잃어 위태위태하다. 주저앉은 어머니에게 포기하지 말고 가자고 설득하는 아들의 모습은 뒤편의 백마와 겹쳐져 비극을 강조한다. 오른쪽 하단의 남자는 화관을 쓴 채 쓰러진 여인을 놀란 얼굴로 부축하고, 중앙 우측에는 군인과 마부가 공포에 질린 노인을 둘러메고 있다. 중앙 하단부에는 죽은 엄마의 품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약한 아이가 위치하여 비극이 더해진다. 좌측에는 멀리서 폭발하는 화산을 두려운 모습으로 바라보는 두 아이의 가족이 있으며, 죽음의 공포에 주저앉은 세 모녀와 한 명의 예언자가 있다. 그 위로는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화산쇄설물을 막아보려고 의자를 머리 위에 올린 사람과 그 주위에 겁에 질린 군상들이 묘사되었다. 작품은 색상과 명암의 극적 대비와 인물의 표정을 담아 그날의 공포를 그려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자연의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인간의 무기력함을 상기시켜 재난 앞에 선 우리를 압도한다.



활화산인 베수비오 화산의 지속적인 분출에도 불구하고 그 풍광을 아름답게 묘사한 화가도 있다. 특히 자연주의 화가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 Camille Corot, 1796~1875)의 작품인 <베수비오 화산(Le Vésuve)>에서 편안하게 묘사하였다.

Le Vésuve, Camille Corot, 24x41cm, Huile sur toile, 19C, Musee du Louvre

이 작품은 섬세한 코로의 풍경그림과는 달리 약간은 거칠고 속도감이 있는 붓질로 파도를 그리고 구름이 반사된 바다를 즉흥적으로 그렸다. 따라서 파도는 움직이며 바다는 하늘과 어우러져 극적 효과 없이도 생동감을 얻는다. 이 와중에도 베수비오 화산은 흰 연기를 내뿜고 있어 풍경에 긴장감을 안긴다.



평온한 풍경 속에서도 화산이 연기를 내뿜듯, 평온한 삶 속에서도 재앙은 여전히 진행 중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재앙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전 08화 <런던 대화재> 작가 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