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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in Atelier Feb 01. 2023

<눈 속의 사냥꾼> Pieter Bruegel

재난(Catastrophe)은 항상 곁에 머문다_7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7-1569)의 겨울과 그 계승자들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평균 1~2도 정도 기온의 하강이 있었고, 이 시기를 소빙하기(The Little Ice Age)라고 부르는데, 기온 하강의 영향으로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기근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경술년(1670)과 신해년(1671)에 '경신(庚辛)대기근'이라고 불리는 기근이 들어 많은 아사자가 발생했고 그로 인한 병사자가 수없이 나왔으며, 인도에서는 데칸 대기근(Deccan Famine, 1630-32), 일본에서는 간에이 대기근(寛永の大飢饉, 1640-43)과 엔포 대기근(延宝の大飢饉, 1674-75), 유럽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위와 기근, 그리고 전염병으로 희생되었다.



회화 작품 속에서 겨울의 냉혹한 추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The Hunters in the Snow (1565), Pieter Bruegel, Oil on panel, 162x117cm, Kunsthistorisches Museum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은 이런 겨울의 혹독한 풍경과 삶의 고단함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이 그림은 그가 앤트워프의 은행가 니클라스 종젤린크(Niclaes Jongelinck)의 의뢰를 받아 당시의 계절을 묘사한 6점의 계절 시리즈 그림 중 한 점으로 12월과 1월의 겨울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의 전면에는 세명의 사냥꾼이 사냥개들을 이끌고 마을로 들어서는 모습이 표현되었는데, 한 사냥꾼은 어깨에 사냥한 여우 한 마리를 메고 형편없는 사냥감에 축 쳐진 모습을 하고 있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과 불꽃의 기울기로 읽을 수 있는 세찬 바람은 겨울의 고단한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까마귀 떼도 먹잇감을 찾아 마을과 사람들을 응시하는 듯하다. 중앙에 날아다니는 까치는 유럽에서 불길한 징조로 마을 위를 날고 있으며, 물레방아마저도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는 겨울의 삭막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A Scene on the Ice near a Town (1615), Hendrick Avercamp, Oil on oak, 58x89.8cm, National Gallery

언어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핸드릭 아베르캄프(Hendrick Avercammp, 1585-1634)는 브뤼겔의 전통을 이어받아 말과 소리 대신 눈과 얼음에 반짝이는 빛의 소리가 가득 찬 겨울을 표현했는데, 얼음 위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침묵 속에 가득 찬 소리를 표현하였다. 그는 네덜란드의 겨울 풍경 속 사람들을 주로 그렸는데,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남녀들, 썰매를 타고 있는 부인, 얼음 썰매 마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빙판 위에서 넘어진 여인들 등 얼음으로 뒤덮인 강 위의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브뤼겔이 높은 시점에서 그림을 그려 깊이감을 주었다면 그는 화면을 수평으로 나누어 그림으로써 근경과 원경을 순차적으로 사라지게 하였고, 얼음에 반사된 대기에 의해 뿌옇게 처리함으로써 원근감을 손쉽게 표현하였다.


The Frozen Thames, Looking Eastwards towards Old London Bridge (1677), Abraham Hondius, London

네덜란드 태생의 아브라함 혼디우스(Abraham Hondius, 1625-1691)가 1666년 런던으로 이주하여 1677년의 얼어붙은 템즈강을 묘사한 이 그림은 이스트성과 옛날 런던 브리지를 배경으로 하여 사람들이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즐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위에서 음료를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각종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서리박람회(The Frost fair)가 열릴 정도였다. 물론 서리 박람회는 7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19세기 초까지 열리긴 했지만 1600년도에 더욱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겨울의 평균 기온이 더욱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지속적인 추위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음은 자명하다.


The Frost Fair on the Thames at Temple Stairs (1684), Abraham Hondius

또 다른 템즈강의 풍경을 묘사한 그의 작품을 보면 마치 현대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보는 듯하다. 이 시기(1683-84) 런던에서는 템즈강이 두 달 동안 얼어붙어 얼음의 두께가 약 30cm에 달하여 프로스트 페어가 지속될 수 있었으며, 그곳에는 상품을 팔기 위한 부스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아 대구요리, 팬케이크, 칠면조, 맥주 등의 음료와 요리를 즐길 수 있었으며, 템즈강의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고, 말과 마차 경주, 인형극, 얼음 위를 질주하는 여우들을 사냥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템즈강이 얼기 전 그곳에서 일하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선원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곤란에 빠졌는데, 강이 얼어붙은 뒤 박람회에서 관광객들을 얼음 위로 안내하거나 배를 썰매로 바꾸어 자신들의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하기도 하였다.


The Great Frost Pamplet by Thomas Dekker (1608), Houghton Library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를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은 왕과 귀족, 비싼 유흥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뿐이었고 당시 찰스 2세(CharlesII, 1630-1685)가 이들을 위한 구호 기금을 조성해야만 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고와 다르게 서리의 혹독함에 몸서리치는 겨울을 보내야만 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빙하기의 추위로 인한 영향은 사회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유럽은 추위로 인한 사회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공포와 혐오를 조장하였고 사회적 불행의 원인을 마녀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돌리기도 하였다. 종교의 이름을 빌어 마녀라는 이름을 덧씌운 사람들은 마녀가 하늘의 비를 사라지게 하고 농작물을 마르게 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약자인 그녀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것이다.

The witch-hunts in early modern Europe(1555), German Print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겨울의 고통은 유럽에서만 있었던 사건은 아니었는데, 당시의 조선에서도 조선왕조실록에 경신대기근 때의 참상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현종(11년, AD1670) 때 8월에 함경도에 얼음이 얼고 서리가 내렸으며, 큰 우박이 쏟아져 내려 과일이 낙과 피해를 입었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역병, 냉해, 폭우, 메뚜기떼의 창궐 등 이상기후현상으로 말미암아 전국이 초토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현종 12년에 제주 목사는 경신년 대기근과 전염병으로 도내 2260명이 죽고 살아남은 자도 그 몰골이 귀신과 같다고 적어 참상을 기록하였다. 당시 조선의 인구 500만 명에서 50만 명 정도가 경신년(1670-71)에 감소했고 을병대기근(1695-96)에는 700만 명의 인구 중 150만 명 정도가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 시기 조선에서는 아이의 유기, 굶주림으로 인한 식인 등의 사건이 발생했으며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런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의 삼정승은 사퇴하였고, 현종은 허례의식을 줄이고 관리들의 연봉을 삭감하였다. 구황촬요의 발간으로 솔잎으로 떡과 죽 등의 식재료를 만들고, 10여 종의 전염병을 대처하는 책(예, 벽온방)도 발간하게 되었다. 서민들은 솜옷을 누벼 입는 형태의 의복이 유행하였고,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온돌의 설치가 확대되었으며, 이에 필요한 땔감의 소비량이 늘어 주위의 산들이 민둥산이 되어 홍수가 잦아지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또한 진휼청에서 기근에 대비하기도 하였으나 산천 초목이 모두 망가져 백성들은 왜란이나 호란보다 더 처참한 상황을 견뎌야만 했다. 유럽에서도 추위에 대응하기 위한 벽난로와 굴뚝의 개량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고,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겨울 스포츠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Antonio Stradivari, 1644-1737)가 만든 바이올린의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는 추운 날씨로 인해 성장이 더뎌진 나무의 밀도가 높아져 지금까지 특별한 음색을 낼 수 있었다.  


소빙하기의 원인이 되었던 태양의 활동이나 화산의 활동 등의 예기치 않은 큰 위기는 사람의 창의력을 자극하며 지혜를 한데 모을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과 마주한 개인은 나약한 것이 사실이다. 2040년이 되기 전에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해수면의 상승, 국지적 폭우, 냉해, 극심한 추위를 동반하여 가난한 이들과 빈곤 국가들에게 더욱 고통의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자연을 겨눈 화살이 다시 우리를 겨냥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며, 어느 순간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를 넘지 않도록 행동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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