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ist in Atelier Aug 08. 2023

<대홍수> Michelangelo

재난(Catastrophe)은 항상 곁에 머문다_10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투쟁이 마주했을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유형의 재난은 어쩌면 진보를 위한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신의 섭리로, 때로는 과학적 분석에 의거해 재난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인간은 마주한 현실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거나, 그와는 반대로 인간의 이타심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중 이번 이야기는 홍수를 소재로 한 두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8~1564)가 1508년부터 1512년까지 그린 성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프레스코 천장화(Sistine Chapel Ceiling)의 노아의 홍수에 관한 작품의 일부를 떠올려 보자.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II, 1443~1513)의 명으로 시작된 천장화를 미켈란젤로는 성경을 33개의 이야기로 나누어 천지창조의 순간부터 아담과 이브, 노아의 이야기, 예언자들과 무녀들을 작품에 담았다. 작품은 2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로 13.2m 세로 40.5m의 크기의 대작으로 모두 336명이 등장한다.

그중 대홍수 그림은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앙에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조각배를 발견하고 필사적으로 올라타기 위해 배위로 기어오르고, 이런 사람들로 인해 배가 뒤집힐 위험에 처하자 그들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몽둥이를 휘두르는 인간성을 상실한 자들의 타락한 모습이 담겨있다. 작품의 오른쪽에는 올리브나무 아래 앉아있는 노아와 그 가족들의 군상, 기진맥진한 젊은 남자를 힘겹게 둘러메고 바위에 오르는 사람, 물에 빠져 겨우 단단한 암반을 부여잡고 지쳐있는 사람에게 안타까운 눈길과 함께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려 섬을 바라보면 밀려오는 홍수를 피해 점점 고지대로 향하는 인간들의 절망적인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나무에 기어오르는 사람, 겁에 질린 두 아이를 달래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엄마와 공포에 질린 채 피난처를 찾아 높은 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멀리 그림의 뒤편에는 홍수의 한가운데 위치한 노아의 방주에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노아의 방주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세상에 만연한 죄와 타락의 책임을 물어 극복할 수 없는 대홍수를 신이 일으켰다는 성경 속의 설화는 비과학적 범주에서의 '두려움과 그로 인한 공포'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믿음을 벗 삼아 극복할 수 있었고, 이런 재난을 믿음으로 극복한 인간이 바로 노아라는 설정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비극을 극복하려면 그것을 양지로 꺼내어 환대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일까? 사실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신(자연)이 내린 벌보다 신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가슴에 새기며 실행에 옮겼던 인간에 대한 찬사라는 점과 경고를 무시한다면 무시무시한 공포의 벌을 인간에게 내릴 수밖에 없다는 양가적 측면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1910년 파리의 대홍수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린 야수파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 1875~1947)의 <파리 범람>(1910)이라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금빛 태양에 반사된 센강의 풍경은 파리를 묘사한 여느 풍경화보다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를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름다운 풍경화 속에 재난적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센강의 좌측에는 마차가 다녀야 할 자리에 배가 다니고, 다리의 수위는 만수위가 되어 다리의 난간에 많은 사람들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L'inondation de 1910 a Paris, Albert Marquet, 33x41cm, 1910, Musee des BeauxArts Pouchkine


파리의 대홍수는 1910년 1월, 센강의 범람이 1주일 동안 지속되면서 강의 수위가 8m 62cm까지 올라갔고 인근 저지대가 범람하였다. 파리지앙들은 도로 위를 배로 이동하거나 임시로 널빤지를 덧대어 연결한 인도교를 만들어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강물의 범람으로 센강 인근의 지하창고는 잠겼으며 도시의 가스는 끊겼고 도로의 바닥에 마차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설치된 목재 블록들은 물 위로 떠올랐다. 도시 외곽철도 라인인 RER역은 침수되었고 센강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시테섬 인근의 다리도 폐쇄되었다. 따라서 파리시민들은 구조대의 보급품에 삶을 의존해야만 했다.



대홍수로 건물의 약 25%가 침수되어 1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5명의 사망이 집계되었는데 결국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파리 시민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에 기록된 크고 작은 홍수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자연의 위력 앞에 선 인간이 단지 나약할 뿐이라는 말로 자연의 위대함 아래 무릎 꿇거나, 재난에 대해 외면하는 시선으로 신에게 위안을 구하는 것은 재난을 교훈 삼아 험난한 역사를 헤쳐나간 인간의 굴곡진 역사와 살아남은 수많은 민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환경오염과 기온의 변화로 인한 극한 환경의 도래는 이미 티핑포인트를 지나 재난 앞에서 인간의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 전지구적으로 재난에 대비한 사고의 대전환을 바탕으로 자연의 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하여 그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하며, 현실 속에서 실행가능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는 토론하고 타인의 이해를 구하는 것만이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도 이런 문제를 직시하여 다가올 어려움에 대해 연대와 협력을 통한 공존의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전 09화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파괴> John Martin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