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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 in Atelier Nov 27. 2022

<멜랑콜리> Anselm Kiefer

재난(Catastrophe)은 항상 곁에 머문다_4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의 <양귀비와 기억(Poppy and Memory)>(1989), <멜랑콜리(Melancholia)>(1989)


유대계 독일인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1940)은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자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된다. 이는 나치와 파시즘에 적대적이었던 그의 많은 글들과 비판 때문이다. 1940년 프랑스가 나치에게 점령당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낀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했고 피레네 산맥을 넘기 위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피레네 산맥이 봉쇄되었다는 사실에 비관하여 다량의 모르핀을 삼키고 자살로 생을 마치게 된다. 그가 생전에 남겼던 <폭력 비판을 위하여>(1921), <독일 비극에의 원천>(1928),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 <역사 개념에 대하여>(1940)를 비롯한 수필집 등의 다양한 저작들은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중 <역사 철학 테제 IX>에는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1920)라는 작품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1921년 벤야민은 뮌헨의 골츠화랑에서 이 그림에 반해 거액을 주고 구입하였고, 그의 친구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 1897-1982)에게 양도하였다. 숄렘은 벤야민의 그림에 대한 애착과 그림을 생각하며 아래와 같은 시를 그에게 헌정하였다.



나의 날개는 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나는 기꺼이 되돌아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영원히 머물더라도 나는 행복을 갖지 못할 테니까.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 <천사의 인사>

My wing is poised to beat
but I would gladly return home
were I to stay to the end of days
I would still be this forlorn

Gershom Scholem, "Greetings from Angelus" (translation by Richard Sieburth)



Angelus Nouvus(1920), Paul Klee, Watercolor, 31.8x24.2cm, Israel Museum


이에 대해 벤야민은 <역사 철학 테제 9>의 첫머리에 이 시를 인용하였는데, 그가 여기에서 기술했던 것처럼 천사는 역사의 진보를 지켜보는 천사로 이해할 수 있다. 화폭에서 이 천사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과거를 응시하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천사는 날개를 펼쳐 날갯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천사의 눈에 보이는 것은  과거의 잔해들뿐이고, 잔해 더미는 산처럼 쌓이고 강풍이 일으키는 흙먼지에 뒤덮여 있으며, 천사는 과거와 현재의 역겨운 잔해들에 대한 공포와 역겨움을 놀란 듯이 응시한다. 그는 미래에 도래할 미지의 세계에 과학과 기술적 진보라고 불리는 강풍에 떠밀려 그 목적지를 상실한 채 휩쓸려가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의 클레는 1916년에서 18년까지 제1차세계대전에 종군하며 전쟁에서의 삶과 죽음, 파괴를 목도하였다. 그는 전쟁을 통해 인간성 부재의 경험과 불안을 고통스럽게 느꼈으며, <새로운 천사>를 비롯한 몇몇의 다른 작품들로 이런 감정들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게 된다. <새로운 천사>는 지금-여기(Ici et maintenant)의 처절함에 대한 현실 묘사로 이해할 수 있는데, 나치에 쫓기고 있는 벤야민의 처지와 후일 나치의 선전부장 괴벨스가 선정한 블랙리스트들의 전시인 <퇴폐 미술전(Entartete Kunst)>(1937)에 작품이 걸려 모욕당한 클레의 동병상련이 천사의 눈을 통해 예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천사의 시선은 앞으로 다가올 홀로코스트의 처절함과 고난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며, 전쟁과 파괴로 얼룩진 세상으로 향하게 될 미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결국 진보는 서로의 면전에서 눈을 응시하며 찌르고 베는 전쟁이 아닌 스크린과 버튼 하나의 작동으로 이름 모를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양상으로 바뀌게 될 테니까...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는 공포와 죽음 등을 다루는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작품을 통해 문화적 기억과 정체성이라는 문제, 역사적이고 신화적이며 문학적 소재에서 차용한 심층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작가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납, 콘크리트, 흙, 식물, 유리, 철조망, 책, 모형 선박들은 어떤 의미에서 상징적이며 깨달음을 주는 메타포로 사용된다.


안젤름 키퍼의 작품인 <양귀비와 기억(Poppy and Memory)>(1989)은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납으로 만들어진 항공기를 전시한 쾰른의 전시회 제목은 '역사의 천사(Angel of History)'였는데 이것은 벤야민의 '역사 테제'와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의 '죽음의 푸가(Death Fugue)'라는 시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안젤름 키퍼의 작품 <양귀비와 기억>의 비행기 날개 위에는 납으로 된 책들 사이로 마른 양귀비 식물이 짓눌려 있으며 죽음과 기억의 소멸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고철이 되어버린 정지된 비행기를 역사와 기억의 회색 기념물로 바꾸어 놓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인간적인 살상 속에서 더이상 시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은 독일 시인 파울 첼란의 시집 <양귀비와 기억(Poppy and Memory)>(1952)에 수록된 '죽음의 푸가'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양귀비를 소재로 차용했으며, 벤야민의 역사에 대한 냉철한 시선에 영향을 받아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해 폐허속의 기념비를 제작한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납이라는 재료는 독성을 가지고 있는데, 고전적 미술작품의 안전성이 납으로 된 유해한 작품으로 변모하며 그가 지속적으로 깨트리려고 하는 과거라는 터부(Taboo)를 전시장으로 소환해 관람객들을 상기시킬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우리가 치료를 목적으로 한 양귀비의 통증을 유화시키는 기능에 주목해 본다면, 안젤름 키퍼가 납이 연금술로써 ‘인류 역사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재료'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양귀비와의 결합을 통해 전쟁의 고통과 기억의 역사로부터 치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 것 처럼 보인다. 

Poppy and Memory(1989), Anselm Kiefer, Israel Museum, Jerusalem



위의 작품과 대조적으로 그는 나치식 경례(지크 하일 경례 Sieg Heil salute)를 모방한 <점령들(Occupations)>(1969)이라는 시리즈의 퍼포먼스/사진을 학위 취득 작품으로 제출했는데, 이 퍼포먼스 사진들은 칼스루에 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in Karlsruhe)의 교수들과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전후 독일에서 나치에 대한 언급과 그들의 만행을 추종하는 듯한 작품의 제작은 비록 그의 의도가 전쟁의 상기라는 목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위한 수단을 어느 선까지 용인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학교 교수였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가 플럭서스 페스티벌 기간에 <Kukei, Akopee-Nein! 1964(1964)>이라는 퍼포먼스를 참고한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요셉 보이스는 그가 주로 사용했던 버너와 펠트, 기름덩어리를 이용해 나치의 과오를 드러내고자 하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를 보다 못한 한 학생이 그에게 주먹을 날려 코피를 터트려 버렸다. 이에 그는 예수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들었으며 주머니에 있던 구원을 상징하는 초콜릿을 관중석에 던졌으며, 자신의 피가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요셉 보이스와 안젤름 키퍼의 행위는 생애의 전주기적 작품들의 분석을 통해 전범국가 독일의 금기사항을 깨고 싶어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있다는 공통점을 알게 한다. 

좌) Kukei, Akopee-Nein! 1964(1964), Joseph Beuys,  우) Occupations(1969), Anselm Kiefer


이러한 점들을 통해 예술가들에게는 제시된 단편적인 작품을 가지고 작품을 비평하는 것과 작가의 생애 전 주기에 걸친 작업들의 흐름을 보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 중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에 관한 문제, 혹은 예술가의 의도와 표현된 형상 또는 방식의 해석에 대한 다양한 논쟁거리를 남긴다. 


그의 작품을 작업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때 <Melancholia>(1990-91)도 납과 양귀비 씨앗을 사용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이 작품은 무거운 납으로 만들어져 날 수 없는 전투기 위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Melancholia I>(1514)에서 표현되었던 오각형 도형을 결합하여 대구(對句)적으로 사용하였다. 


Melancholia I(1514), Albrecht Dürer, 18.5x23.8cm, Staatliche Museen zu Brelin

뒤러의 작품에 그려진 오각형 입방체 도형을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500)는 황금비를 담은 완전한 이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작품에서는 미카엘 천사가 이성적이고 수학적인 도구들을 앞에 두고 상실감에 빠진 것처럼 묘사했는데, 안젤름 키퍼도 이러한 오각형의 입방체를 차용하며 인간의 이성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독일인의 수치스럽고 피로 물들인 과거의 기억을 폭로하였으며, 집단적 우울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상실에 처한 현대인들에게 보편적 가치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Melancholia(1990-91), Anselm Kiefer, Israel Museum, Jerusalem


이런 관점에서 동시대 영국 작가인 피오나 배너(Fiona banner, 1966~)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폐기 처분된 실제 전투기인 <해리어(Harrier)>(2010)과 <재규어(Jaguer)>(2010)를 실내 공간에 설치하였다. 과학적 타락이라는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인데, 설치된 전투기는 무차별적 폭격으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 하늘을 나는 ‘용-괴물’처럼 취급되며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한다. 도덕과 이성의 신뢰에 관해 작가가 고심한 흔적은 전투기가 수직으로 하강하는 모습을 통해 그려졌다. 실내 공간에 실제의 전투기를 거꾸로 설치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데, 전투기는 날개를 펴고 실내 공간을 날 수 없을뿐더러 하강하는 방향성으로 인해 현실에서 관람객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처럼 위협하며 일상 공간으로 침투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Harrier(2010), Finna Banner, BAe Sea Harrier aircraft, paint 7.6x14.2x3.71m




1999년 일본 예술연맹은 제국 최고상(Praemium Imperiale-사실 제국 최고상은 아이러니하다)을 그에게 주며 그의 예술이 "외상을 입은 민족과 고통을 당하고 갈라진 세계를 치유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으며, "역사와 현재의 윤리적 문제에 참여한다는 예술의 임무를 이처럼 확고히 천명하고 있는 예술가, 이처럼 인간적 노력을 통해서 죄의식의 해소 가능성을 표현하고 있는 예술가는 오늘날 몇 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요즘의 일본은 전쟁에 대한 그 어떠한 반성과 책임도 지기를 원치 않으며 세계를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비판적인 예술작품을 포장하여 자신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척하는 것은 역사와 고통 받은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이며 언어도단이라 여겨진다.


한명의 예술가가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획득하려고 하는 부단한 시도들을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지켜볼 때 역사와 예술의 진보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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