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이야기가 나왔으니 대표적인 쇼아(Shoah, 홀로코스트의 히브리어) 작품을 몇 번에 걸쳐 살펴보자.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에 의해 계획적으로 저질러진 만행 홀로코스트(Holocaust, 1933-1945)는 2차 대전의 전, 후로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탄압하고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나치는 그 외에 슬라브족,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도 학살했는데 그 수를 합치면 천백만 명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 학살은 1935년 나치 독일의 반유대주의 법인 뉘른베르크법(Nürnberger Gesetze)을 기반으로 그들을 조직적으로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감금된 이들은 과로나 병, 가스실, 총살로 사람들을 죽임을 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막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어려웠던 독일의 경제사정을 타개하기 위해 히틀러를 선택했던 독일 국민들은 그가 정권을 잡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대인과 외국인을 증오하고 차별하도록 부추겼다. 독일 민족은 독일 민족 우선주의 정책을 도입하였는데, 그중 유전병 자손 방지법에 의거해 장애인, 부랑자, 흑인, 범죄자들에게 불임을 강제하고 격리했던 사실을 눈감았다. 또한 '독일인 혈통 명예 보호법'을 통해 독일인과 유대인의 혼인, 관계를 금지했으며, '국가 시민법'을 통해 시민권을 제한했다. 과학사적으로는 19세기 프랑스 생물학자 죠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의 이론인 '비교해부학(Comparative anatomy)'을 통해 나치의 인종 위생학에 근거를 제공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인종주의가 인종 간의 생물학적 차이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차원까지 확장되어 독일인들의 우월감 고취의 자양분이 되었고, 이런 방식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타인종을 배척하고 학살하게 된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끝나기 1년 전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억, 시간, 죽음, 부재를 주제로 빛, 양철 상자, 액자, 헌 옷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홀로코스트라는 대량 학살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제작한다.
Monument (Odessa), (1989-2003), Christian Boltanski, 203.2x182.9cm, Jewish Museum
볼탕스키는 부모님이 나치 치하에서 지하실로 도피하며 지내야 했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다. <기념비(Monument, Odessa)>는 희미하게 프린팅 된 사진과 양철 상자, 전구를 이용한 설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사용되었던 사진은 홀로코스트 비극의 희생자를 기념한다. 희미한 인물 사진은 다큐멘터리와 실제 학살이 자행되었던 곳의 희생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상기시키며 우리의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는 집단 무의식을 자극한다. 그는 이것들을 삼단의 제단화처럼 배치하였고, 제단화 앞에 놓여 죽은 자들을 추념하는 유대인들의 야흐르제이트(Yahrzeit) 양초를 전구로 대체하였다. 작품에서 사용된 아이들의 이미지들은 1939년 유대인의 부활절(Purim)을 기념하는 유대인 학생들의 단체 사진 속에 있던 인물들을 차용하여 확대, 자르기, 명암의 대비를 통해 익명성을 강화하였으며, 6백만 명의 어린 희생자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그들에게 닥쳤던 시련과 고난, 죽음을 애도한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는 매년 <기념비(Monumenta)>전시회를 기획한다.
2010년 볼탕스키는 <사람들(Personnes)>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전시에는 심장소리, 녹슨 상자들, 옷더미, 빛을 이용한 작품들을 설치했다.
Personnes/Nobodies, (2010.1-2), Christian Boltanski, Installation in Grand Palais, Monumenta 2010.
그는 <사람들> 사이로 관객이 산책할 수 있도록 작품을 구상하였다. 작품의 한켠에 설치된 수북이 쌓인 옷더미 뒤편에는 운명의 심판자 같은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는데, 옷더미를 무작위로 들어 올렸다가 떨어뜨리기를 반복한다. 이것은 역사 이래로 지속되었던 비극적인 희생들의 이면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하고, 마리오네트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며, 이러한 비극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호소한다. 볼탕스키는 크레인에 대해 "저에게, 무작위로 두드리는 신의 손가락이 생명을 앗아가는 것입니다"라고 언급하며, 이것이 계획적으로 설치되었음을 알렸다. 옷더미 위로 쏟아지는 창백한 빛의 냉소적인 얼굴은 겨울에 전시를 개최하며 난방을 거부한 채로 죽음의 한기가 가득한 공간과 어우러져 차가운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138개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심장박동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은 작품의 일부가 되어 관객을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으로 빠져들게 한다. 바닥에 널린 낡은 옷가지들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재현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사람들의 육체는 없고 주인을 잃은 형형색색의 텅 빈 옷가지들이 바닥에 구획되어 있는 69개의 격자 위를 채우고 있다. 이제 바닥에 놓인 옷들은 육체 없는 피부가 된다.
작품은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의 파놉티콘(Panopticon)처럼 인간을 구획하고 감시한 수용소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했던 공리주의자의 구상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어떤 것이든 도구로 삼아 희생할 수도 있다는 암묵적인 동의하에 대중을 교육시키고 감시하여 질서를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이점은 히틀러가 독일인들을 부추겨 사회적 약자와 유대인들을 증오하게 만든 역사적 사실 아래, 그들을 분리하고 감시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과 다름 아니다. 작품의관객은 감시자가 되어 그들의 양심이 부재했을 때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구획된 통로를 따라 걸으며 인간의 부재와 공허한 감정을 느끼고, 이러한 사유방식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다. 작품에 사용된 옷들은 작가의 뜻에 따라 아프리카로 보내져 재활용되었다.
Christian Boltanski, 42x3.9m, Installation in Grand Palais, Monumenta 2010.
전시장의 한켠에 자리 잡은 646개의 오래되고 녹슨 비스킷 상자 더미는 생과 사를 가르는 강제 수용소의 장벽처럼 죽음의 기념물로 자리한다. 녹슨 상자는 홀로코스트로 희생당한 아이들이 빼앗겼던 장난감을 보관하던 오래된 낡은 상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희생자들의 유골함처럼도 보인다. 작품은 실제 세계와 보전된 기억의 세계를 서로 교차시키며 관람객들의 뇌리에 죽음을 각인시킨다.
Christian Boltanski, Installation in Grand Palais, Monumenta 2010.
상자에 붙어 있는 라벨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런 숫자들은 강제 수용소나 감옥, 군대의 훈련병들에게 부여되어 신원을 구분하는데 사용된다. 따라서 숫자를 부여받은 사람들은 인격이 제거된 도구로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관리대상이 된다. 관리 대상이 된 그들의 기록을 담은 낡은 상자는 과거에 존재했던 희생자들의 현현을 생생하게 증거 한다.
No Man's Land,(2010.5.14-6.13), Christian Boltanski, Installation at the Park Avenue Armory
<사람들>은 <No Man's Land>라는 작품으로 파크 애비뉴에 있는 무기고에 다시 설치되었다. 볼탕스키가 갤러리가 아닌 장소에서의 전시를 선호했던 이유와 같이 파리의 그랑팔레와 뉴욕의 파크 애비뉴에 있는 무기고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무기고의 작품에서는 스웨덴에서 녹음된 심장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일본의 섬 테시마(Teshima)에서 '심장 아카이브(Les Archives du Cœur)'라는 프로젝트를 위해 모은 6만여 명의 심장박동 소리 가운데 일부를 우연히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심장박동은 죽은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섬이 될 것이다"라며 "심장박동을 수집할 수는 있지만 사람을 보존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테시마에 있는 심장 기록 보관소에서는 방문객의 심장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데, 녹음된 심장소리는 시간이 흐른 뒤 기록된 소리의 일부가 되어 보존된다.
결국 <사람들(Personnes)>이라는 제목은 프랑스어로 말 그대로의 '사람들'이 생략된 '아무도 없는' 부재의 상태가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부재는 볼탕스키가 만들어낸 오브제의 흔적들로 전시장을 가득 채우며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존재의 기억'으로 다시 태어난다.
볼탕스키의 작품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양심을 따라 행동할 것을 권고하며, 부재를 그리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희생자들의 존재를 그리며, 권력에 대한 감시가 부재할 때 이런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