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휴일. 일을 다시 시작한지 대략 3개월이 돼 가는데, 평일에 쉬는 건 처음인 듯합니다. 서로 바빠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밥이나 한 끼 할까 해서 만나러 나갔죠.
[옆에 커피빈 있는데 좀만 기달. 30분 정도 긴급회의 있다고 하네 ㅠ 쏘리 ㅠㅠ]
나 참… 11시 30분까지 도착하라고 시크하게 던지기에 허둥지둥 챙겨서 나왔더니…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죠.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회사 일이라는 걸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 날 따라 커피빈은 묘하게 내키지 않았습니다. "스타벅스 멤버십 카드에 잔액이 남아있으니…" 라고 중얼거리며 지도 앱을 뒤져봤지만, 가장 가까운 매장조차 10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거리더군요. 그 외에 자주 가던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도, 가서 커피 한 잔 사들고 돌아오면 30분이 넘을 만한 곳에 있었습니다.
진성 귀차니즘이 쏴아아- 밀려드는 걸 깨닫고, 느릿느릿 바로 앞 골목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근방에 사무실이 이렇게 많은데 설마 카페가 하나 뿐이겠어?' 하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아니나다를까, 'Cafe BELUGA'라는 이름의, 지도 앱에 나오지 않는 카페가 하나 있더군요.
2천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침 손님도 한 테이블밖에 없었고, 30분 정도니까 멍하니 앉아 있어도 괜찮겠지 싶었죠. 커피를 받아서 앉으려다 보니, 맞은편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으지 않는 연습>이라는 제목.
"저기, 혹시 저 책 읽어도 되는 건가요?"
"네? 아, 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짤막한 글 여러 편을 엮어놓은, 짧은 시간 때우기에 적절한 스타일의 책이었습니다. 목차에서 끌리는 소제목을 찾아 그 페이지만 열어보는 식으로 읽었죠. 얕게나마 눈길을 끌었던 구절 몇 개를 메모하면서.
[어디야?]
친구 녀석의 카톡이 옵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50분 가까이가 흘렀더군요. 회의가 좀 길어졌나 봅니다. '너네 회사 빌딩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카페'라고 이야기했지만 모르는 눈치더군요. 건물 앞 횡단보도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읽던 책을 덮어 원래 있던 자리에 넣어두고, 녹다 만 얼음조각이 남아있는 컵을 카운터에 올려놓습니다. 제법 가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날, 적당한 볕이 잘 어울리는 카페에서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발견한 어느 날.
사소한 것으로 기분이 들떴던 하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진정한 자신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의 기분과 비위를 맞추다 보면 언젠가 지쳐버린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보답을 제대로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에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 <모으지 않는 연습> 中, '사람들의 호의는 모으지 않는다'에서 발췌
친구가 많으면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화려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편하지 않은 사람을 무리하게 친구의 틀에 넣지 않아도 된다.
세상 사람 모두를 '친구와 그 이외의 관계없는 사람'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듯 먼 듯한 관계로도 충분히 즐겁게 지낼 수 있다.
- <모으지 않는 연습> 中, '친구를 모으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