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기간, 그리고 최근 일을 쉬고 고향에 내려가 지내던 기간을 빼면 자취를 한지 대략 10년이 좀 안 됩니다.
몇 번의 이사 끝에 어쩌다 보니 소위 말하는 '강남권'에 살고 있죠. (행정구역 상으로는 서초구입니다만…) 어차피 산 집 아닌 빌린 집이건만,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강남 쪽에 산다'는 말만으로도 전해지는 이미지 같은 게 있나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디 살고 있느냐'는 구체적인 동네 위치를 덧붙이는 편입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요.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사는 곳이 이렇다 보니 일상에서 강남대로를 걸을 일이 꽤 많습니다. 업무 때문에 누군가를 만날 때도, 스터디나 취미 생활 등 대외적인 뭔가를 할 때도,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도 강남대로의 여러 포인트를 약속장소로 잡을 때가 많거든요.
상대방이 약속장소를 정할 때는 보통 '강남역 O번 출구'에서 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만약 "너 편한 곳에서 봐. 강남 근처면 상관없음."이라고 하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신논현역"으로 정하곤 하죠. 집에서의 거리가 강남역보다 가깝다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도 있긴 하지만… 좀 더 그럴듯한 이유를 꼽으라면 바로 앞에 교보문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게끔 움직인 다음, 남는 시간은 교보문고에서 보냅니다. 교통이 혼잡한 곳이다 보니 차가 막혀 상대방이 늦거나 하면 평균 한 시간 반 정도를 서점에서 보낼 수 있죠. 주제별로 분류된 서가를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요즘은 보통 심리, 역사, 철학 쪽 코너를 기웃거립니다) 책 몇 권을 살피다 보면 시간이 꽤 잘 간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지난 주말. 별다른 약속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집에만 있기 심심해서 나왔는데, 그냥 홀로 딴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교보문고 근처에 와 있더군요. 특별히 사야겠다 싶은 책은 없었지만, 이끌리듯 들어갔습니다.
잠시 여기저기 기웃거린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든 봉투에 책 한 권과 핸드메이드 나무 책갈피가 들어 있더군요. 뭐죠, 지름신에게 한 방 맞은 이 기분……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기분입니다. 이런 식으로 산 책들은 늘 두고두고 곱씹으며 읽곤 했거든요. 제 값어치를 할만큼 잘 본다고 할까요.
다음 번에는 꼭 정신줄을 붙잡고 서점 안에서 느끼는 기분들을 적어봐야겠습니다. 서점에 서식하며, 저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져 지갑을 열게 만드는 지름신의 실체가 무엇인지… 꼭 밝혀보리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