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숨겨갑니다.

열린 공간 속 '과거'들은, 혼자만 기억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by 이글로

SNS를 주구장창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페이스북을 참 열심히 했었죠.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 혈기 넘치던 감정적 표현,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까지… 머리로, 온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결과들을 훤히 드러난 공간에 적곤 했었습니다.


15분 페북.JPG 이런 별 영양가 없는 드립을 칠 때도 있긴 했습니다. (나름 호응이 좋았던…)


언제부턴가 페이스북이 보여주는 '과거의 오늘'을 챙겨보는 게 하나의 고정 일과가 됐습니다. 몇 년 전 이맘 때쯤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에 관한 글조각들. 그것을 들여다 보는 짧은 시간 동안,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간을 들여다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는 뜻일 테죠.


처음에는 재미있었습니다. 몇 년 전 오늘, 나에겐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과거의 나(때로는 다른 사람 같기도 한)와 마주하고 비동기 채팅을 주고 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내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나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썩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부터 '공개범위 수정'을 눌러 글들을 비공개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과거의 오늘'을 비공개로 바꾸기 시작한 것도 얼추 1년 정도가 돼 가는 듯하네요.


head-in-sand.jpg 뭐… 그래봐야 이런 느낌이긴 합니다만.


평소보다 꽤나 늦은 시간, '과거의 오늘'을 비공개로 바꾸며 두 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는 어리석었다 반성은 하더라도 부끄럽다 여기지는 말자는 것.


비록 설익었을지언정 그땐 그 생각들이 최선이었고,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으며, 나름대로 깊이 있게, 또 진지하게 생각하며 썼던 글이라는 걸 저 스스로는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금, 그 시절의 생각이 부족하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좀 더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요.



다른 하나는 후회하지 않겠다는 것.


누군가는 '인생낭비'라며 날선 비판을 날리곤 하는 SNS지만, 거기에 들이부은 시간이 분명 적지 않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시절의 저는 그게 재미있었고 즐거웠으니, 혹시 언젠가 다시 피어오를지도 모를 한 떨기 후회마저도 사뿐히 즈려밟으려 합니다.


다만, 뒤늦게 그 모든 흔적들을 비공개로 바꾸는 건,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그 시절의 저를 스스로만 기억하는 게 좋겠다는 아집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과거의 발자국들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하나씩 묻어갈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온전히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세상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머물기 위해 애쓸 겁니다.


가상의 공간에 비하면 좁고 답답할 수는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풍부한 감각과 감상이 넘치는 곳.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라는, 삶에 단 한 번밖에 존재하지 않는 장면들이 모여 있는 세상에 말이죠.


0001559_touch-typing.jpeg 물론 그래도 글은 틈틈이 계속 쓸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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