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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Jan 31. 2021

익숙한 것과의 이별

익숙한 것들과의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익숙함이 될 시작에 관하여

만남. 그리고 헤어짐.

보통은 인간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다.


하지만, 주위의 모든 것을 소중히 하는 사람 중에는, 길고 짧은 시간을 함께 한 물건들도 만남과 헤어짐의 관점으로 보는 이도 종종 있다. 내가 그러하듯이.


생명 부여받지 못한 것과의 관계는 아무래도 일방적인 성격을 . 사용자에 의한 일방적 관계. 하지만 애착이나 정, 추억과 같은 감성이 덧붙여진다면, 일방적 관계일지라도 조금 더 풍성한 느낌이 되기도 .


어떤 물건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자연스레 익숙해지며 정이 든다. 또 어떤 물건은 시작부터 이름을 지어주거나 의미를 부여하며 애착의 씨앗을 뿌리기도 한다. 메커니즘 측면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에 대한 정이나 애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연스레 자라난 것이든, 의도적으로 뿌려진 것이든, 정이나 애착은 시간을 먹으며 자란다. 그렇게 손에 익고, 눈에 익으며, 일상에 존재함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러다 보면 비록 사람이나 동물만큼 폭넓은 공감을 사지는 못할지라도, 주위의 가까운 이들은 알아채고 존중해줄 정도가 기도 한다.


 물건에 대한 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대개 언젠가 불쑥 찾아오는 헤어짐을 맞이할 때가 돼서야 느끼게 된다. 스스로는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는, '일방적 관계'의 대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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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런 일방적 관계 하나가 끝을 맺었다. 함께 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굵직한 의미가 있었던 관계였다. 가만히 되짚어 보면 추억도 꽤 많았고. 그래서... 생각할수록 더 무겁게 다가왔던 헤어짐이었다.


알고 있다.

세상 대부분의 물건은 본질적으로 '소모품'에 가깝다는 걸. 평균 수명이라는 것이 있고, 때로는 그 수명과 상관없이 떠나보내는 일도 적지 않다는 걸. 잃어버리거나, 혹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 타인에게 넘기거나,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는 걸.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변치 않는 법칙. 짧든 길든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헤어짐을 향해 가게 마련이라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물건이나 매한가지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다 해서 헤어짐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많이 겪다 보면 다소 무뎌질 수는 있겠지만, 느낌이 무뎌진다고 해서 실제 무게도 가벼워지는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헤어짐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초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이미 그만큼 정이 들었다는 뜻일 테니까. 여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라면... 헤어짐은 한층 더 진한 여운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며칠 동안, 조금 울적했다가, 살짝 괜찮아졌다가, 괜히 뭉클해졌다가, 다시 무덤덤해졌다. 어릴 때부터 "잔정이 많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산 탓에, 괜찮은 듯 지내다가도, 때때로 아쉬움이 툭툭 찾아올 것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미리 대비는 하겠지만... 마음처럼 수월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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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이 난다. 잔정이 많다는 말에, "정을 붙이면 다 같은 정이지, 세상에 알찬 정이 따로 있고 잔정이 따로 있느냐"며 나름 철학적(?)으로 대들곤 했던 꼬마 소년. 이제 그는 꽤나 커버린 눈으로 세상을 보며, 감성 듬뿍 끼얹은 표현들을 엮어  헤어짐의 아쉬움풀어내고 있다.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해 따라오는 여러 생각과 감정들. 그들을 좀 더 의연하게 마주 보고 쓰다듬으며, 아쉬움에 너무 깊이 잠겨버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능숙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무수히 겪게 될, 익숙한 것들과의 예정된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익숙함이 될 또 다른 만남들에 대하여.




거짓말 같은 시간이예요.
당신이 없는 하루는 정말 낯설죠.
애써 잊은 척 잠을 청해 보지만
감은 두 눈엔 그대가 보여요.

거짓말이죠. 이렇게 끝났다는 게.
그대 없이는 원래의 내가 아니죠.
모두 달라요. 아주 작은 습관까지도.
너무 힘든 건 나 혼자겠죠.
익숙한 것과의 이별 때문에...


멍하니 바라보던 너의 눈빛,
슬픈 너의 미소까지 모두 기억해요.
모르게 손에 드는 전화기에
나도 몰래 너의 번홀 누르죠.

믿을 수 없죠. 이렇게 끝났다는 게.
그대가 없는 세상은 너무 힘들죠.
달라졌어요. 나의 모든 마음까지도.
익숙치 않은 이별 때문에...

아무것도 난 할 수 없어요.
익숙한 것과의 이별 때문에...

- KCM, <익숙한 것과의 이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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