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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Feb 12. 2022

글을 쓰는 "다른" 방법

지금까지와는 다른 낯선 방법, 그래서 다시 흥미를 찾았다

둘러보니,  곳곳이 메모장이다.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는 리갈 패드.

표지에 '메모용'이라고 큼직하게 적힌 스프링 노트.

어디선가 구해다 쌓아놓은 이면지 뭉치.

색색의 속지를 뽐내는 다이어리.

스마트폰 홈 화면에 떡하니 자리 잡은 메모 앱 위젯까지.

아차, 하나가 더 있다.

쓰다만 년치 글감이 욱여넣어져 있는 작가의 서랍.


수많은 메모장을 들춰보면,  

무척이나 많은 '나'를 만나게 된다.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살아가는 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 속의 나.

보일 듯 말 듯 흐릿한 나.

과거 어느 한순간에 잠깐 존재했던 나.

나라고 하기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나.

정말 내가 맞는 믿을 수 없는 나.

없던 것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나......


여기저기 적힌 메모를 훑다 보면,

'모든'까지는 아니더라도  삶의 상당 부분이 담겨있는,

시간의 보고(寶庫)가 아닌가 싶어 진다.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곳에나 적어놓기 일쑤지만,

제멋대로인 와중에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주제' 위주로 적혀 있다는 것.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배우고 해왔던 글쓰기는 늘 그랬다.

어느 날, 어떤 순간,

슬그머니 머릿속에 들어온 단어 하나.

 단어를 중심에 두려 애쓰며 만든 '주제문'.

 주제를 돋보이기 위해 붙여가.

붙인 살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뼈대(개요).

디테일한 부분을 챙기는 연마 작업.


때로는 작업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어느 한 과정이 반복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방법 자체는 늘 한결같았다.

주제를 정하고 그로부터 출발하는.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인가 '쓰는 재미' 덜해졌다.

'글 쓰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싶었다.

단어를 토대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답을 정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식의 반복.


십수 년을 그렇게 써온 탓에,

나도 모르는 새 매너리즘에 빠져버렸던 걸까.

1년 가까이 불안해하면서 글을 쓰지 않은 이유.

그것이었을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완전히 틀린  같지는 않다.


그래서 물었다.

다른 방식의 글쓰기는 없을까?

스스로에게도 여러 번 물어봤다.

답이 나올 리 없었다.

모르는 이에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글쓰기 방법을 다룬 책도 몇 권 읽었다.

그중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어느 독립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문고판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샀지만,

만만치 않은 삶과 싸우느라 몇 달간 묵혀뒀었다.


매일 한 장씩이라도 읽자는 다짐으로 펼쳤을 때,

가느다란 빛줄기를 만났다.

명확하게 제시해주는 단순한 방법.


그저 하나의 문장에서 시작하라.


정해놓은 주제를 향해 가지 말고,

문장 다음에 쓰고 싶은 문장을 쓰고,

에 어울리도록 고쳐가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만두고 싶을 때 끝내는 방식.


생소하다.

한동안은 엉망인 글이 나오기 쉬울 듯하다.

아마 이 낯선 방식을 연습하는 동안은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도 기쁘다.

다시 글쓰기에 흥미를 붙일 열쇠를 구한 것 같아서.

내 삶을 이어갈 중요한 동력을 되찾은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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