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글로 May 30. 2022

빛나던 것들의 스러져 감에 관하여

가끔, 눈길이 달라질 때가 있다.

오랫동안 살았던,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동네의 풍경이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는 때.


'구(舊)도심'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오래된 느낌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그야말로 번화가와는 거리가 먼 동네.

꾸준히 새단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낡아 해진 외관이 

훤하게 드러나 있는 건물들이 모인 거리.


물론, 내던져진 듯한 그 모습엔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산이라든가, 재산권이라든가 하는 

소위 '어른 네들의 사정' 말이다.


눈으로 들어오는 감상에서

골치 아픈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한다.

대신, 세상을 비춰주는 창에 

감성의 함량을 최대치로 높여본다.


그것들도 빛나던 때가 분명 있었다.

이제는 선망 어린 눈길보다 

따가운 눈총을 받기 일쑤지만, 

지나간 시간의 어느 지점에서는 

부러움이나 애정, 자부심과 같은 

따뜻한 감정을 가득 받았을 것이다.


인간의 눈이란 본래 그렇다.

무척이나 얄팍하고 또 쉽게 현혹된다.

특히 미(美)에 관해서는 더욱 민감해서, 

어제의 동경이 오늘의 무심함으로, 

또 내일의 환멸로 바뀌기도 한다.


비단 낡은 동네의, 오래된 건물의 

담벼락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간과 인간이 빚어내는 변덕을 

당연한 것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있지 않던가.

어떤 것은 희미한 잔상으로.

어떤 것은 뚜렷한 존재감으로.


시간의 힘은 너무도 공평하기에, 

언젠가 찾아올 스러짐 또한 공평하다. 

그 순리를 거스를 방법 같은 건 없다.

그저 그날이 오기까지, 

어찌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온 힘을 다해 빛나는 것만이 최선일 뿐.


오래된 동네지만, 

많은 것들이 새단장하는 모습을 본다.

새로이 들어서는 그 모든 것들의 앞날에 

작은 기도 한 줄이나마 바친다.


모두가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빛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바람만큼,

나 또한 그럴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