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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Jun 06. 2022

악순환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그야말로 서로가 적(敵)이다.

'총칼만 안 겨눴다 뿐이지'라는 낡고 흔한 꾸밈말은 무의미하다. 모두의 머릿속에, 혀에, 손가락에 이미 쥐어져 있다. 날을 바짝 세운 칼과, 언제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총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라는 말이 있다.

'하늘을 함께 일 수 없다', 즉 같은 세상에 살 수 없다고 여기는 원수라는 뜻이다.

보통 부모나 자식의 원수, 혹은 그에 견줄만한 강렬한 원한을 표현할 때 쓰는 말로, 요즘 정치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정치(政治)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 활동이다.

혹은 국가나 조직을 운영하는 활동이라고도 한다.


자, 어려운 말은 그냥 주워다 놓은 걸로 충분하다.

중요한 건, 정치의 본질이 '잘 살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정당이니 계파니 하는 것들도 정치라는 도구를 더욱 잘 쓰기 위한 수단이어야 마땅하다. 그게 원론이다.


그래, 인정한다.

세상은 원론대로만 살기엔 너무 어렵다.

그래서 '도구를 쓰는 방법'을 두고도 의견이 나뉜다.

의견이 다르면 싸울 수 있다. 

당연하다.

인간은 본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니, 사소한 다툼은 물론 욕설에 멱살에 주먹질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저러라고 대표로 뽑았나 싶어 현타가 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출처 : 웹툰 <용이 산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듯하다.

국회에서의 막말, 삿대질, 몸싸움 생중계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볼 지경이 됐으니 이제는 버틸만한 내공이 됐거니 싶었는데, 이제는 한 술 더 떠 거의 섬멸전 수준이 된 듯하다.


오직 이기기 위한 싸움이고, 이겼다 하면 상대편을 몰아붙이고 핍박하기 바쁘다.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수단과 방법에 제한이 없다.

거칠기로 으뜸가는 스포츠 종목들에도 일련의 규칙이 있는데, 이쪽은 그런 것도 없어 보인다.

'정치'는 이미 뒷전이고, 상대방 때려잡는 게 우선순위가 아닌가 싶다.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무의미한 질문일 것이다.

어차피 '저쪽에서 먼저 시작했다'라고 답할 테니까.

아니, 대답이나 해주면 다행이려나.

때려잡기에 혈안이 된 마당에......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무의미할 것 같다.

'저쪽이 멈추면 생각해보겠다'라는 뻔한 말이 그나마 가장 온건한 답일 테니까.


보면 볼수록 답답하지만, 이번에도 투표를 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아 뉴스를 보고 칼럼과 오피니언을 뒤적이고, 책을 곱씹는다.

어쨌거나 살아가는 동안 더 나은 도구를 찾을 수 없다면, 그 도구를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할 테니까.

그러려면 비록 지금은 미숙할지언정, 갈수록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돌고 도는 승자독식, 패자 전멸의 악순환.

언제쯤 나는, 납득 가능한 수준의 갈등과 타협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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