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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글로 Jul 12. 2023

[연재소설] 저 너머의 하늘 #41.

“너… 너 이 새끼……”


진우는 잔뜩 독이 오른 욕설을 뱉어낸다. 분노가 배어들자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변하고, 온몸은  부들부들 끊임없이 떨린다. 말 한 마디도 끝까지 이을 수 없을 만큼 통제하기가 어렵다.


[그래, 그래. 기억났구나? 그럼 이제 이야기가 좀 통하겠어.]


사내는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나긋나긋한 말투로 대답한다. 보란듯이 양팔을 벌리고 한껏 도취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주위가 온통 캄캄한 가운데 유독 뚜렷하게 보이는 모습. 마치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 배우 같은 모습이다.


[아… 정말 짜릿했지. 찰나의 순간을 앞두고 일을 망쳐버렸지만… 그것조차도 짜릿하게 느껴질 정도였어. 그때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오늘 여기서 너희 모두를 다시 볼 일은 없었겠지? 네가 있는 힘껏 때려준 덕분에 꽤 넉넉하게 옮겨둘 수도 있었고… 뭐, 여러 모로 이쪽이 좀 더 재미있는 것 같으니 결과는 아주 마음에 드는군.]


진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감정이 끓어오름을 느끼자 저절로 주먹이 꽉 쥐어진다. 지금 들은 말로 짐작하건대, 조금 전 손이 멋대로 움직였던 건 그날 놈을 냅다 후려갈겼기 때문인 듯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라는 의문은… 별 의미가 없다. 이미 현실로 나타난 시점에서는.


지금 중요한 것. 그래, 지금 중요한 게 뭐지? 가만, 뭐…였더라? 아. 열받는다. 짜증이 솟구친다. 한 번 머릿속을 침범한 분노는 재빠르게 번져 나간다. 이성의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자꾸만 열기를 뿜어내 다른 곳으로 퍼뜨린다. 덕분에 생각이 자꾸 툭툭 끊어진다.


“진우야, 일단 진정해라.”

“……”


긴장과 분노가 함께 담긴 눈빛으로 사내를 노려보는 진우. 미미하게 떨리는 그의 어깨에 영태의 손이 턱- 올려진다. 


“진정하고 심호흡해. 네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방금 전 같은 일은 없을 거야.”

“…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함께 듣고 있는 와중에도, 영태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분노와 싸우고 있는 진우를 대신해 차근차근 앞뒤를 짜맞춰 본다. 차분함이 영태의 손을 통해 전달된다. 슬그머니 들어온 차가운 기운은 느지막히 머리로 올라가더니, 뿌리를 내리려던 울분을 에워싸고 천천히 녹여간다.


“잘 들어라. 너, 지금 손 움직여 봐. 무슨 이상 같은 건 없는지.”


다소 뜬금없는 영태의 말에 진우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하지만 특별한 이상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노려본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하지만 그 외의 별다른 반응은 없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방금 전에 멋대로 움직인 다음 벌써 몇 분 정도 지났다. 팔을 뻗고 손을 들어 총을 쏘는 동작만이라면 수십 번도 할 수 있을 시간이지. 그런데, 아무 문제도 없어.”

“아……” 


잠시 멍해졌던 진우는 곧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제가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에 저 놈이 제 손을 ‘조작’했다는 건가요? 지금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니 안 되는 거고?”

“뭐… 말하는 나도 이게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다만…”

“아뇨, 이해합니다. 더군다나 방금 전에 직접 겪어보지 않았습니까. 믿을 수밖에요.”

“외계인 손 증후군(Alien Hand Syndrome) 같은 느낌인데… 정확한 발동 조건을 알 수 없으니 무작정 같은 취급을 할 수는 없겠군. 어쩌면 충분히 더 움직일 수 있는데 그냥 놔두는 걸 수도 있고.”

“여러 모로 귀찮은 자식이군요. 살다살다 별…”

“그러게 말이다. 어지간한 막장은 다 보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신기한 미친놈은 많구나.”


상황을 해석할 그럴듯한 가설 하나를 찾은 덕분일까. 끊어질듯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 덜어진 기분이다.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진우는 다시 분노의 감정을 피워올렸다. 이번에는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호오… 머리 굴리는 능력이 제법이야. 하지만 그리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어. 방금 전에는 시험삼아 해봤던 거니까. 같은 짓을 또 시도할 생각은 없거든.] 

“미친놈. 참 친절도 하셔라. 너 같으면 그 말을 믿겠냐?”

[글쎄. 어쨌든 정신 바짝 차리고 있는 녀석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게 어렵다는 건 사실이니까. 믿을지 말지는 너희들의 자유지만 말이야. 게다가… 어렵게 애써봤자 손만 움직일 수 있어서는 할 수 있는 게 뻔하잖아. 별로 재미가 없어.]


잠자코 듣던 영태의 눈매가 살짝 빛난다. 시선은 앞에 고정한 채 진우에게 말을 건넨다.


“꽤 쓸만한 정보를 얻은 것 같은데.”

“네? 어느 부분이요?”

“방금 저 놈이 ‘손만 움직일 수 있다’라고 한 부분.”

“에……”

“수수께끼 같은 걸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니 간단하게 설명해주마. 넌 예전에 저 놈과 만난 적이 있지. 타격을 통해 직접 접촉한 것도 있었고. 그것과 연결지어 생각해봐라. 단순히 만나기만 한 걸로 조종하는 게 가능했다면 지금 나도 마찬가지여야 해.”

“하긴… 그렇다면 직접 접촉이 있었던 부분만 조작이 가능하다는 걸까요?”


영태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다. 조금 전처럼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저 능력을 사용해 기습하려 했다면, 발을 먼저 걸어 넘어뜨리고 그 다음 총을 쏘는 게 성공 가능성은 더 높았을 거다. 하지만 손만 썼어. 그것도 보란듯이 내 시야가 보이는 쪽으로.”

“그렇네요. 마치 ‘난 이런 능력이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알려주는 느낌인데요.”

“정리하자면, 어떤 이유이든간에 저 놈은 지금 네 손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란 거다. 그것도 자주 쓸 수는 없는 것 같고.”

“직접 닿았던 곳에 한해서, 한시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략 설명이 되지. 정확히는 이것도 가설일 뿐이다만.”


최대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려 신경쓰긴 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을 리는 없다. 대화가 길기도 했고, 무엇보다 처음 마주쳤을 때 그리 크지 않은 성량으로도 충분히 몇 마디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걸 떠올리면 타당한 추측이다. 


그럼에도 사내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다. 깍지낀 두 손을 뒤통수에 갖다 댄 모습이 꼭 한가로이 동네 산책이라도 나온  모양새. 이따금씩 휘파람까지 부는 걸 보자 영태와 진우는 부아가 치민다. 페이스에 말리면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멋대로 움직이는 감정을 조절하기란 영 쉽지 않다.


“팀장님.”

“왜.”

“가설을 세우셨으면 검증을 해봐야죠?”

“맞는 말이긴 한데… 뭘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요. 그냥 들이박는 거죠.”

“뭐? 너 제정신이냐? ……라고 평소 같으면 말했겠지만… 지금은 딱히 더 나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구나. 총부터 냅다 갈기기엔 탄환도 그리 넉넉하지 않고.” 

“총은 결정적인 순간에 쓰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일단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그리 멀지는 않으니까… 냅다 달려들어서 한 대 먹여보겠습니다. 운 좋으면 정말 ‘닿았던 사람의 닿았던 부위’만 조작할 수 있는 건지도 확실히 알 수 있겠죠. 무엇보다도… 최소한 저 약오르는 꼴은 안 봐도 될 테니까.”


깍지꼈던 손을 풀어 귀를 후비고 늘어지게 하품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영태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한 대 후려치고 싶다는 데는 나도 격하게 동의한다. 그래서, 네가 하게?”

“당연히 이런 건 젊은 막둥이가 해야죠. 게다가 만약 가설이 맞다면 팀장님은 저 자식한테 안 닿는 편이 낫다는 거잖아요? 저야 뭐… 이미 글러먹었고.”

“간만에 똑똑한 소리 하나 했더니 마무리가 허술하구나. 그 가설이 맞다면 너도 주먹 말고 다른 곳은 안 닿는 게 좋지 않겠냐.”

“… 아, 그렇네요. 그럼 주먹에 울분과 짜증을 꾹꾹 눌러담아서 한 방 후려갈겨 볼까요. 빠르게… 갑니다!”


말끝을 힘줘 뱉으며 진우가 튀어나간다. 망설임 따위 없는 과감한 타이밍에 영태조차도 흠칫 놀랐다. 달리기 위한 준비 동작 같은 걸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눈에 띄게 빠르지는 않았지만, 짧은 거리에서 ‘기습’을 하기엔 충분한 속도. 진우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들며 상대의 표정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듯, 살짝 놀란듯한 눈빛이 시야에 가득 들어온다. 진우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머금으며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으랏차!!”


퍽-!


가속도가 붙은 묵직한 주먹이 사내의 왼쪽 관자놀이에 꽂혔다. 고개가 휙 돌아가며 중심을 잃고 휘청한다. 아쉽게도, 쓰러지지는 않는다.


“헤헤- 핵사이다 펀치 맛이 어떠냐, 이 새끼야. 아오, 젠장. 내 주먹도 아프네. 면상에 무슨 철판 납땜이라도 해뒀냐? 뭐가 이렇게 단단해?”


진우는 반작용으로 얼얼한 주먹을 흔들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 영태가 달려온다.


“괜찮냐?”

“네, 뭐 그럭저럭. 무슨 철판 같은 걸 때린 느낌이라 손이 엄청 아프긴 한데… 뼈가 나가거나 하진 않은 것 같네요.”

“어쨌든 물리적 타격이 먹힌다 이거지… 그럼 이것도 먹히겠지. 전세 역전이다, 이 새끼야!”


철컥-


영태는 총을 꺼내들어 겨눴다. 사내는 얻어맞은 부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뻐근한듯 목을 좌우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총구를 빤히 바라본다.


[아, 이거 한 방 먹었군. 클클클, 예상 외야. 아주 흥미로워.]

“여유로운 척 하나는 잘하는군.”

[여유로운 척? 글쎄, 이게 ‘척’일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허세 좀 부리지 마라. 자꾸 신경 긁으면 일단 다리 언저리쯤 한 방 쏴주고 시작하는 수도 있어.”

[아, 그건 좀 곤란한데. 너희들에게 신경 쓰다 보니 타이밍은 그럭저럭 맞춰진 것 같지만… 주연 배우가 도착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서 말이야.]

“… 이 새낀 또 뭐라는 거야? 좀 전 같은 서프라이즈 쇼 따위를 준비한 거면 정중히 사양할 테니 넣어두는 게 좋을 거다. 여기서 더 열받게 하면 다음엔 주먹떡 맛을 보게 될 테니까.”


진우가 주먹을 들어보이며 으름장을 놓는다. 사내는 피식 웃을뿐 다른 대꾸는 하지 않는다. 날카로움과 여유로움. 미스매치처럼 보이는 두 기세가 힘겨루기를 벌인다. 


[전개가 너무 뻔해서 슬슬 지겨워지려던 참이었는데… 날 흥미롭게 해준 보답으로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려주지.]

“……”

[혹시 말이야. 그때 그 폭발 사건, 원인이 뭐였는지 궁금하지 않아?] 

“폭발? 폭발…이라면 설마…”

[너희가 초기 수사를 했을 거잖아? 물론 소득은 없었겠지만. 생각해보니 조금 전 그 여자도 비슷한 질문을 했었거든. 뭐, 엄밀히 말해 그쪽은 질문 포인트가 다르긴 했지만 말야.]


두 사람은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버렸다. 현장을 수습할 당시의 비참함부터,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미뤄야 했던 무력감까지. 마음 한 켠에 웅크리고 있던 미련이 소리친다.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떻게든 해답에 가까이 갈 수 있다면! 


휘영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팀 전원 투입을 결정한 것, 최대한 서둘러 추진한 것, 그 과정에서 돌발적인 상황도 있었지만, 이렇다 할 큰 잡음은 생기지 않았던 것. 모든 일이 영태 휘하 팀원들이 한마음으로 비슷한 생각을 품었던 탓도 없진 않을 것이다.


“이 새끼… 그것도 역시 네 짓이었냐?”

[휘이익- 뭐지, 이 격한 반응? 이미 알고 찾아온 게 아니었나봐? 하긴, 너희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니… 몰랐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군.]


오리무중이었던 사건. 휘영을 통해 일련의 기이한 경험을 하면서, 이른바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됐다.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이어지는 돌발상황을 겪으며, 다들 같은 심증을 품었다. 


다만, 그저 추측만 할 때의 느낌과 사실, 그것도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놈으로부터 분명하게 확인했을 때 피어오르는 감정. 두 가지는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들끓는 분노 한복판에서, 잔뜩 엉켜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갔다.


“아, 그거 참 고마운 말씀이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네놈 새끼만 잡아 족치면 지금까지 날 골치 아프게 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해결된다 이거군?”

[그런가? 뭐… 너희들 사정이야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이지.”


쾅-!

총성과 함께 사내의 발 언저리 땅바닥이 움푹 패여나간다. 


[…….]

“…….”


짧은 침묵. 여유롭게만 보이던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방아쇠를 당긴 영태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뚜렷해졌다. 갑작스러운 격발에 진우도 덩달아 긴장한 모습이다.


“휘유… 팀장님, 조종 당하신 거 아니죠?”

“걱정 마. 내가 쏜 거 맞으니까. 근데…”

“네?”

“……아니다, 아무 것도.”


꿀꺽-

영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솔직히, 다리를 노렸다. 비록 한창 때에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늘 사격에는 자신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회피한다 해도 네까짓 놈이 총알보다 빠르겠냐- 싶었다. 물리적인 공격이 통한다는 걸 확인했으니, 다리 한쪽의 움직임이라도 제한해두면 어렵지 않게 상황을 종결지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 과잉 진압 논란? 징계위원회? 그런 건 모두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그런데… 그랬는데… 빗나갔다. 바닥의 탄흔을 본 순간,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피한 건가? 이 거리, 저런 자세에서, 인지할 수도 없을 만큼의 속도로? 글쎄… ‘상식 밖’을 의식하며 답을 찾으려 해도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알 수 없는 뭔가가 탄환의 방향을 휘어버린 듯했다. 머릿속 모든 생각의 흐름이 처음부터 까발려진 채로 철저히 조롱당한 것만 같은 기분. 덕분에 의도치 않게 위협 사격만 가한 모양새가 돼 버렸다. 


‘젠장.’


이 곳에 들어온 후로, 저 놈을 만난 뒤로, ‘상식’이라는 놈에 어긋나는 상황을 겪은 게 벌써 몇 번이던가. 다만, 그 와중에도 상식이 통하는 상황은 있었기에, 이번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었다. 혹시 ‘상식적인 상황’ 자체가 실수를 유발하기 위한 미끼는 아니었을까? 보기 좋게 빗나가버린 뒤에야 드는 생각.


영태는 복잡한 감정을 감추려 애쓰며 침묵을 지킨다. 자신의 당황스러운 감정을 진우에게까지 전염시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짧지만 밀도 있는 침묵. 그 사이를 노려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쉽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했을 텐데……. 뭐, 너희들이 먼저 시작한 거니 상관 없겠지. 그럼 제대로 한 번 해볼까.]


쉬익- 퍽-!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 순식간에 사라진 사내는 어느새 영태의 앞에 나타났다. 뭔가가 움직이는가 싶더니 둔탁한 음향와 함께 겨누고 있던 권총이 저만치 날아갔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크윽-!”

“팀장님! 컥-!”


영태는 시큰한 통증에 손목 언저리를 움켜잡고 몸을 웅크렸다. 두 손으로 단단히 파지하고 있던 총을 이렇게 허무하게 놓치다니. 진우가 달려오려 했지만, 어느새 사내가 다시 사라졌다가 그의 앞으로 나타나 가슴께를 때린다. 그리 세게 때린 것 같지 않았는데도 흉근 전체가 욱신거린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언제 그랬냐는듯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헛것을 본 건가 싶을 만큼 어이 없는 상황. 하지만 사내 뒤편으로 떨어져 있는 총과 여전히 맴도는 통증이 현실임을 매섭게 일깨운다.


[어때? 머리가 나쁜 것 같지는 않으니 상황 파악은 충분히 됐을 거라 생각하는데.]

“…….”

[하긴… 상관 없으려나? 시나리오대로만 됐다면 좀 더 너그러운 결말로 끝내는 것도 고려해보려고 했는데. 너희들이 멋대로 순서를 바꿔버리는 바람에… 내가 좀 화가 났거든.]


퍽-! 퍼벅!

여전히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뱉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바람 소리와 함께 묵직한 타격이 가해진다. 영태는 오금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털썩- 무릎을 꿇었고, 진우는 양손으로 복부를 감싸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아악!”

“커헉-!”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고통으로 녀석이 움직였다는 걸 짐작할 뿐이다. 영태는 정강이가 부러졌거나 최소한 뼈에 금이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격히 빠져나가는 체력에 정신까지 흐릿해질 지경. 애써 의식을 부여잡고 고개를 돌려 진우를 바라본다. 여전히 복부를 움켜쥔 채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 입가에는 침과 피가 섞여 한 방울씩 흐른다. 


‘단 한 방에 골절과 내상이라… 크크크, 정말 말도 안 되게 미친 새끼로구만.’


절망감에 서서히 물들어가려던 때, 진우의 뒤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어둠 속에 균열이 생긴 듯 가느다란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균열은 곧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모습으로 변하며 미미한 빛을 내뿜는다. 그 공간 사이로 휘영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주인공께서 납셨군. 그럼 피날레를 장식해 볼까…!]


순간, 영태의 눈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의 진우가 팔을 앞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 자신에게 총을 겨눴던 팔이다. 본능적으로 오싹한 느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다리의 통증을 견디며 휘영이 모습을 드러낸 쪽으로 몸을 날렸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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