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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Jun 09. 2024

왜 자꾸 나보고 귀엽대



  "엄마, 할~미~ 해봐."

  "할~미~"

  "귀여워. 녹음해야겠어."



  휴대폰을 가져와 내 얼굴에 대고 다시 말하란다. 할~미~. 그놈의 할미가 뭔지. 몇 달 전에 할미라는 단어가 웃기다고 해서 헬(프)미랑 비슷하게 애절하게 몇 번 불렀을 뿐인데 뭔가 유행어가 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할~미~하라고 성화다. 이젠 녹음까지 하라고 해서 했더니 이 느낌이 아니니 다시 해보란다. 왜 원작자에게 지적질이냐. 거실 바닥에서 뒹굴거리면서 잼이 반응에 맞춰 몇 마디 해주고 있었더니 가만히 지켜보던 잼이가 또 그런다.



  "귀여워. 생긴 건 안 귀여운데 하는 짓이 귀여워."


  응? 이게 딸이 엄마에게 할 말인가요? 이게 칭찬인지 아닌지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른 채 어벙벙해 있자 다시 강조한다. 생긴 게 아니라 하는 짓이 귀여운 거라고.



  "엄만 피터팬 같아."

  얼마 전 잼에게 호들갑 떨면서 우리 딸 왜 이렇게 예쁘냐고 팅커벨 같다고 하자 잼이가 그러면 우리 집 고양이 안콩이는 웬디 남동생 같고 아빠는 후크 선장 같다고 하길래 그럼 엄마는 웬디냐고 했더니 냉큼 그랬다. 피터팬 같다고. 통통 튀고 도발적이라나.

 


  "그런데 그거 알아? 너 키우면서 알게 된 아이엄마들은 내가 이런 사람인 거 전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 앞에선 말도 많이 안 해."

  "진짜? 이렇게 웃기면서?"

  "너랑 네 아빠 앞에서나 까불지 다른 데에선 안 까불어."

  "그럼 OO이모는? OO이모도 엄마 이러는 거 몰라?"

  "음... 모를 거 같은데? 엄마, OO이모 앞에서도 그렇게 막 까불고 그래본 적 없는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그랬다. 아이 키우면서 만난 지 벌써 십 년이 지났지만, 그 사이 아이친구엄마가 아니라 내 절친이 되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술자리에서 OO이가 신나서 떠드는 나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그런다.



  "너, 회사 다니기 잘한 거 같아."

  "응? 뭔 소리야."

  "너 재밌어졌어."



  회사를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나온 내 가면에 회사 사람들이 속고 있다고, 회사 사람들은 내가 엄청 까불고 사회성 좋고 밝은 사람인 줄 안다고, 지인들에게 말하면 다들 그랬다. 너, 그런 사람 아닌데 이상하다. 그러면 내가 좀 회사라는 데를 가면 그러는 거 같다고, 지금 회사 사람들이 나한테 속고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OO이가 하는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헷갈려졌다. 



  나는 가면을 쓴 건가. 나는 어떤 인간인가. 회사에서만 그런 거면 왜 친구 앞에서도 그 가면이 나왔나. 오히려 나는 시니컬한 사람이야, 나는 어두운 사람이야라는 최면을 스스로 걸고 있는 건 아닌가. OO이도 그랬다. 너는 그런 사람이라고 너 스스로 생각하는 게 큰 거 같다고. 



  그렇다고 회사에서나 친구 앞에서의 모습과 집에서의 모습을 비교할 순 없다. 평소 잼이와 남편 앞에서 하는 짓거리를 밖에서 보여주면 오히려 사회성이 매우 떨어지는 이상한 인간으로 찍힐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은근 동료들이 나를 귀여워한다. 그게 무언의 표현으로도 느껴졌었는데 얼마 전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갔더니 냅다 다들 그러는 거 아닌가.



  "머리 이렇게 하니까 더 귀엽다."



  더? 더 귀엽다고? 그러니까 원래도 귀여웠는데 더 귀엽다는 이야기인 거잖아. 왜 여기서도 나보고 귀엽다고 하냐. 마흔 한참 넘긴 나이에 왜 자꾸 여기저기서 귀엽다고 하냐. 정작 우리 엄마아빠도, 오빠들도 나보고 귀엽다고 한 적이 태어나서 여태까지 한 번도 없는데. 이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나보고 처음 귀엽다고 말한 우리 집 남자에게 물어봤다.



  "여보, 나 귀여워?"

  유튜브 보며 맥주 마시던 남편이 갑자기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놀라서 고개를 쳐든다.

  "아니, 사람들이 나보고 귀엽다잖아."

  허,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썩소를 짓는 남편에게 버럭 "네가 예전에 나보고 귀엽다고 그랬잖아!" 소리 질렀더니 한 마디 한다.


  "그래, 예전엔 귀여웠지......"

  왜 말 뒤에 말줄임표가 붙었냐. 왜 구어인데 말줄임표가 보이냐. 말을 말자. 귀여운 내가 참자.






잼 : 엄마 귀여워? 쫓아다니며 집착하니 치를 떠는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UnsplashGeran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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