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게 주는 스트레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뇌가 작은 동물을 부러워한다.
두통이란 말이 우리 집에서는 입에 오르지 않는데 잼이가 머리가 아프단다. 다는 아니지만 내 주변의 두통을 앓는 사람들 목 주변을 만져보면 뭉친 경우가 많아서 머리가 아프단 소리를 들으면 목부터 마사지해 주는 편이라 혹시 하면서 잼이 목을 만져보았다. 이제 열두 살. 윤석열 나이로는 이제 열 살인데, 왜 이리 목 주변이 굳었냐.
"잼, 스트레스가 많아?"
목과 어깨의 뭉친 부분을 슬슬 만져주니 잼이 아! 아! 소리를 지른다. 살면서 처음 겪는 고통이리라.
"응."
이 꼬맹이는 왜 스트레스가 많을까.
잼이가 좀 크고 나서 병원 진료를 받으면 종종 이 질문을 받는다. 스트레스가 많아? 처음 이 질문을 듣고 놀랐다. 이런 꼬맹이한테 스트레스가 많냐고 물어본다니, 그것도 의사가, 스트레스 때문에 아플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된 건가, 벌써. 그리고 알게 됐다. 스트레스라는 건 남이 주는 것보다 내가 주는 게 더 크고 잼이도 나와 비슷한 기질이어서 스스로가 주는 스트레스가 클 거라는 거. 어릴 때, 아니 이십 대까지도 내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이 났다. 이제 좀 여유로워졌다고 그새 잊어버린 내 옛일을 아이를 통해 기억해 냈다.
가끔은 그 젊었을 적을 생각하면 전생 같기도 하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예전의 나. 예민하고 자책하고 화가 많고 감정이 널뛰었던 그때의 나. 그랬던 만큼 몸도 안 좋았다. 손발이 차고 매일 체했고 자주 배가 아팠다. 마음이 편해진 게 먼저였을까 살이 찐 게 먼저였을까 몸이 따뜻한 게 먼저였을까. 세 개가 동시에 왔다. 그래고 그전의 나를 잊었다.
우리 꼬맹이는 정말 나를 많이 닮았다. 외모부터 항상 엄마 미니미란 소리를 듣던 아이인데 기질까지 똑 닮았다. 그래서 너무 이해가 가고 그래서 너무 안 됐다 싶기도 하다. 앞으로 나처럼 그렇게 힘들어할까, 자신을 그렇게 미워하게 될까,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게 될까.
잼이와 내가 다른 점들도 있다. 나만큼 거칠지 않고 나만큼 꼬이지는 않았다. 지인에게 나랑 진짜 닮았는데 순하다고 하니 환경의 차이 덕분 아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너도 환경이 좋았다면 그렇게 거칠어지진 않았겠지 했다. 맞다. 잼이에게서 모종의 구원을 느낀다. 나도 이런 인간으로 타고난 건 아니었을 거라는.
그렇다면 기대를 걸어도 될까. 나만큼 오래 힘들어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기대. 스트레스를 나보다 빨리 이겨내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대. 지금은 오로지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우선은 잠들지 않고 날뛰는 저 녀석을 잡아 뉘이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지만.
잼 : 그래도 알아서 이제 잔다고 드러누운, 월요일이 두려운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