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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May 26. 2024

속상한 밤이 다가온다



  일요일 저녁 9시 51분.


  그전에는 초고를 쓰고 고치고 고치고 다시 쓰는 데 며칠이 걸렸다. 그러면 초고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글이 되었다. 그런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요즘엔 그냥 일요일 밤에야 책상 앞에 앉아 브런치를 연다. 


  잼이는 오늘도 티브이 앞에 앉아 있다. 흔한 남매 유튜브는 몇 년을 봐도 질리지 않는지 보고 있다. 더 자극적인 유튜브에 빠져있는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 건가. 다른 아이들보다 낫다, 이게 맞는 말인가. 이게 가능한 말인가. 모두가 그냥 다를 뿐. 하지만 알게 모르게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의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 아이는 낫네, 이런 종류의. 한 번도 어떤 트러블을 겪지 않았던 아이를 키웠기에 더 그렇게 느꼈던 마음.


  일요일 저녁, 아니 밤. 나도 잼이도 내일 아침이 두려운 날. 잼이에게는 더 다를 내일 하루. 


  잼이는 지난 금요일 학교에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한 잘못과 그 잘못으로 인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받았다. 아니, 보고라기보다 그건 '이르기'였다. 얼마 전 어디선가 봤던 글이 생각났다. 학원 선생님이 알고 싶지 않은 자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 늘어놓았다고, 잘하는 선생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자신이 교육하고 통제해야 하는 일을 이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그 글을 읽은 바로 그 며칠 전에는 몰랐다. 내가 이런 전화를 받을 줄은.


  학원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은 다르다. 학교 선생님은 좀 더 교육과 통제에 책임이 있다. 아이가 잘못한 것을 부모가 제대로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걸 자신의 감정 토로와 이르기로 대체하면 안 된다. 아이가 처음으로 '싫다'라고 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그래도 선생님의 권위를 아이에게 지켜주려고 애써 거짓말을 하며 아이의 잘못에 대해 묻고 듣고 잘못한 건 시정해야 한다고 따끔히 이야기했다. 


  선생님의 워딩에 문제가 있었다. '자기'가 '속상'했다고, '자기'가 '실망'했다고, '자기'가 '기분이 나빴다'라고. 거기에는 내 아이도, 내 아이로 인해 진짜 속상했던 아이도 없었다.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의 기분을 전달하는 건 어떤 저의라고도 할 수 없는 앝음만 보일 뿐이었다.


  내 아이가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잼이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의 입장을 들어주지 않은 것, 특히 선생님이 자신의 행동을 이른 아이의 말만 듣고 일방적으로 혼낸 것에 대한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잘못한 아이에게도 억울함이 있다, 할 말이 있다. 그게 변명일지라도, 거짓일지라도 누군가는 들어줘야 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다운 선생님을 만난 건 손에 꼽는다. 옛날이었고, 고등학교는 사립을 다녀 더 심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또라이인 선생들만 모아놓은 학교였다. 그렇기에 잼이가 늘 같은 반 친구들이나 학부모들이 별로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자기는 괜찮다고 말하며 다니는 걸 참 다행이라고, 복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다 좋지는 않다, 네 마음에 들지는 않을 거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말해주었다. 언젠간 속상하게 하는 선생님도 만나게 될 거라고. 그런데 그게 지금일 줄은 몰랐다. 


  선생님은 이미 잼이에게 선입견이 생긴 것 같다. 모범생인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며 이번 일 뿐 아니라 지난 일을 들추며 과장되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잼이와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장이 맞는 것 같다. 아직 한 학기 이상이 남았는데 나야 마주치지 않으니 크게 상관없지만 주 5일 얼굴을 맞대어하는 잼이가 걱정이다. 


  이 이야기를 아직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 주 참 잼이와 남편과 셋이 즐겁게 보냈는데, 키보드 앞에서 끄적이다 보니 술술 나온다. 이 글은 수정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 내 날 것의 마음을 그대로 남긴다. '나'는 '속상'하다. 내 속상함이 지금 이 일에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내 속상함이 더 중요한 비슷한 사람인가. 이렇게 글을 쓰니 이 일이 뭔가 대단한 큰일인 것 같지만 남편이나 아이가 고등학생, 대학생인 지인들은 듣고 헛웃음을 친 작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잼이에게는 큰일이다. 그리고 잼이에게 상처받은 아이에게도 큰일이다. 


  잼이는 내일 교실에 어떤 마음으로 들어설까. 어떤 눈길들을 견뎌야 할까. 내가 대신해주고 싶다는 게 이럴 때 드는 마음인가 보다. 어린 열두 살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아직 기억한다. 아주 작은 것에도 생채기가 크게 난다. 그렇다는 걸 알기에 잼이가 상처 준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말을 묵혔다가 나와 토요일에 터놓고 이야기한 잼은 토요일 밤 잠들기 전 "학교 가기 싫다."라고 몇 번을 말했다. 이제 곧 잠들어야 할 시간,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사진: UnsplashJeremy 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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