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리 와! 뒹굴뒹굴!"
잼의 호출에 안방으로 들어가면 잼은 나를 보고 꺄르륵 웃는다.
"으아으으으, 으으, 왜, 왜 웃어."
"엄마 좀비가 나타났다!"
"으으으."
의도하지 않았지만 좀비가 된 나는 이불에 누워있는 잼을 공격한다. 이 엄마 좀비의 무기는 다섯 손가락, 공격 방법은 간지럽히기다. 잼은 내 간지럼 공격에 간지러워서 반, 좋아서 반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한다. 한 손으론 잼이를 끌어안고 한 손으론 간지럽히기! 그러다 뽀뽀하다가 계속 이불 위를 둘이 굴러다닌다.
"엄마, 우리 반에서 엄마랑 이러는 애 나밖에 없을 걸? 그런 애가 있다고 해도 내가 제일 그럴걸?
"크크. 그럴 거 같아."
"엄마가 착하면 이렇게 지낼 수 있는데."
"그래? 엄마가 착해서란 말이지~"
세상에 나보고 착하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딱 둘이다. 우리 엄마, 그리고 내 딸.
"그런데 엄마가 착하기만 하면 애가 좀 짜증 나게 크잖아. 다 된다고 하니까 뭐가 안 되는지 그런 것도 모르고. 암튼 주변에선 엄청 짜증 나는 애가 된단 말이야?"
"그래?"
속으로 한참을 웃었다. 너무 오냐오냐 하면서 키우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벌써 주변 애들을 보면서 느꼈다는 건가? 자기 반에도 그런 애가 있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는 그러진 않잖아. 혼낼 땐 혼내니까. 그런데 엄마가 혼낼 땐 뭔가 킹 받아. 엄마가 혼낼 때 무섭진 않은데 킹 받아."
"킹 받아? 그게 뭐야, 크크크.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엄마한테 대놓고 할 수 있다는 게 엄마 장점 아니냐? 네가 막 다 솔직하게 말해도 엄만 안 혼내잖아. 다른 엄마들은 훈계 나오고 혼내고~"
"그러니까, 엄마가 안 그러니까 말하는 거잖아. 그런 반응이면 말을 안 하겠지!"
"아니, 그러니까 엄마가 안 그러는 건 맞잖아! 그러니까 얼른 엄마 칭찬해 달라고! 빨리!"
그런데 잼이나 나나 '그런데'가 말버릇인 거 같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암튼 그런데 잼이와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그러지 않는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그래서 결론은 좋다는 거일 텐데 정작 칭찬은 안 하고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자기가 대단한 거 아니냐고 자기를 칭찬하라고 한다.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돼?
잼이가 나보고 착하다고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공부해라, 숙제했냐, 이런 잔소리를 안 해서이다. 잼이도 자기 친구들한테 듣는 친구들 엄마 이야기나 나도 내 지인들이 자기 아이들한테 하는 이야기 들어보면 숙제 때문에 일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집은 그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하든 안 하든 그건 자신의 일이니 알아서 할 거란 잼이의 확고한 생각이 있고 그걸 나도 존중하기 때문이다. 아니, 숙제를 안 해서 선생님한테 혼나든 공부를 못하든 그건 너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라고 내가 이야기한 게 먼저였나. 이런 우리 집 이야기를 하면 아직 어려서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좀 더 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말하지만 뭐, 아직 어린 지금이라도 여유 좀 부려봐야지 언제 부리나.
사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란 이야기는 잼이 유치원 때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들었다. 그때 그들의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이었고, 잼이는 그들이 말한 어리지 않은 나이로 커갔지만 아직은 공부 부분에서 잼과 나의 관계는 달라진 게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항상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별 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해서 한마디 하면 잼이도 바로 인상 쓰며 반응하곤 하는데 그러면 작았던 불씨가 서로 핑퐁 하며 점점 커져 큰소리가 오고 가기도 한다. 다른 엄마와 딸들처럼 아주 사소한 일에 지치지도 않고 다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하며 마찰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우리 저녁 시간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엄마! 뒹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달려가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한다. 까르르르, 잼이가 웃는다. 그러면 아까 얄밉게만 보였던 잼이 얼굴이 다시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천사가 된다. 우리 집 천사는 참 여상스럽게 심쿵하는 말도 잘한다.
"엄마, 잘 자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아무렇지 않게 컴퓨터 앞에 있는 나를 지나치며 말한다. 갑작스러운 사랑 공격에 순간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재,잼이도 잘 자요. 나도 잼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요."
사랑 표현을 잘하는 잼이가 좋다. 그렇게 키운 내가 좋다. 자, 어서 나를 칭찬하라.
잼 : 엄마 사랑해요, 표현 잘 하는 초등 고학년.
엄마 : 잼과 띠동갑.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띠동갑에서 한 바퀴 더 구른 나이에 잼을 낳았지만 잼과의 수준 차이는 한 바퀴를 빼야 한다.
사진: Unsplash의Sai De Silva